당신의 상식을 배반하는 '주리틀기'에 대한 진실

2017-05-3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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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관계가 없습니다 / SBS '육룡이 나르샤'사극을 보면 의자에 앉은 죄수가

사진은 기사와 관계가 없습니다 / SBS '육룡이 나르샤'

사극을 보면 의자에 앉은 죄수가 기다란 나뭇대(주리)로 허벅지를 비틀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른바 '주리틀기'다.

주리틀기의 원래 명칭은 '주리'로 끈으로 묶은 다리 사이에 주릿대를 넣고 비트는 '주뢰(周牢)'가 변한 말이다. 도둑 같은 잡범에 주로 행해졌다.

사극에 등장하는 주리는 실제와 다른 점이 많다. 먼저 의자가 아니라 땅바닥에 앉은 채 집행됐다. 고문 부위는 허벅지가 아닌 정강이, 팔이었다. '팔주리'라는 게 따로 있었다. 뒤로 묶은 양팔 사이에 주릿대를 넣고 비트는 방식이다.

주리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고문 강도가 상당했다. 뼈가 부러지거나, 근육이 찢어져 장애인이 된 사람이 많았다. 백범 김구도 젊은 시절 주리를 당하다가 다리뼈가 부러졌다.

조선 왕실은 이런 폐해를 들어 1732년(영조 8년) 공식적으로 주리를 금지했다. 물론 암암리엔 계속 행해졌다.

주리는 조선 고유의 고문법도 아니다. 조선 전기 문신 한명회(1414~1487)가 중국 명나라에서 들여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아무 기준 없이 마구잡이로 집행되지도 않았다. 형구(고문도구) 크기와 횟수, 고문 부위까지 엄격히 규정돼 있었다.

무엇보다 주리는 조선시대 당시 형벌로 분류되지 않았다. 조선 왕실은 '태장도유사(笞杖徒流死, 태형·장형·도형·유형·사형)' 5가지만 형벌로 인정했다. 주리는 죄인을 추궁하기 위한 고문의 일종이었다.

주리는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에게 '배교(자신이 믿는 종교를 저버리는 것)'를 받아낼 목적으로 자주 사용됐다. 아마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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