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000대 맞기' 계약서 쓴 아이...학교폭력자치위는 있으나마나

2017-07-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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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공립 중학교가 교내 학교폭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공립 중학교가 교내 학교폭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 학생들은 가해 학생들과 '3000대 맞기 계약서'를 쓰거나 현금 20만 원을 요구받는 등 괴롭힘을 당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변호사 사칭 논란이 있는 부모를 교내 학교폭력 관리위원에 위촉하거나 일부 학교폭력 사례를 교육청에 보고하지 않는 허술한 대처를 보였다.

◈ "3000원 안 갚았으니 3000대 맞자" 담임교사는 '학폭' 보고 누락 의혹

해당 사실을 인지한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1월 A중학교에 대한 감사에 착수해 같은 해 2월 보고서를 내놨다. 위키트리가 입수한 이 보고서 등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이 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B군은 같은 반 C군에게 "3000원을 빌렸는데 안 갚았다"는 이유로 계약서를 썼다. 1원에 한대씩 3000대를 맞는다는 내용이었다.

가해자 C군은 혼자가 아니었다. E군 등 반 친구 4명과 무리지어 아이들을 괴롭혔다. 피해자 B군도 혼자가 아니었다. 같은 반 D군과 함께 괴롭힘을 당했다. E군은 같은 해 9월 D군에게 20만 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소식이 담임 선생님과 D군 부모에 알려지자 "없었던 일로 하자"며 해당 사실을 덮으려 했다.

E군은 당시 D군에게 보낸 SNS 메시지에서 "학교 끝나고 조용히 돈을 달라"며 "이 일은 우리 둘만 아는 거다. 누구 귀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했다.

가해자 E군과 D군이 나눈 대화 내용 / 위키트리, A씨 제공
가해자 E군과 D군이 나눈 대화 내용 / 위키트리, A씨 제공

◈ '변호사 사칭' 혐의 학부모가 위원으로... 삐걱거린 폭대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에 따르면, 학교는 학폭 사실이 확인되거나 피해 학생·학부모에게 관련 제보를 받았을 때 5인 이상, 10인 이하 위원으로 구성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폭대위)를 의무적으로 열어야 한다. 위원 절반은 학부모 대표로 뽑는다. 나머지는 교원 등 학교 관계자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교감이나, 학생 생활 지도 경력이 있는 교사가 맡는다.

C군과 E군 무리의 학폭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른 기간, 폭대위는 총 3차례 열렸다. 한 번(서면 사과)을 제외하곤 모두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표면상으론 아무 문제 없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로펌을 운영한다"며 변호사 사칭 혐의를 받는 경찰 출신 학부모 L씨가 폭대위원에 위촉되는 등 다소 삐걱대며 운영됐기 때문이다.

기사과 관계 없는 사진입니다 / Shutterstock
기사과 관계 없는 사진입니다 / Shutterstock

특히 L씨는 C군과 E군 무리의 학폭 문제로 열린 폭대위 당시 피해 학부모에게 "자제분이 괴롭힘당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피해 학생을 모든 반 학생이 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망상"이라고 말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교육청은 이에 대해 보고서에서 "논란 가능성이 있는 발언"이라며 "제지나 주의를 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폭대위는 또 피해 학부모 동의 없이 B군 등 피해 학생에게 심리상담 조치를 결정해 수습 과정에서도 문제를 보였다. 학폭법 제16조에 따르면, 폭대위가 피해 학생 보호를 위한 조치를 할 때는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의견 진술 기회를 부여하는 등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정엽 학교폭력 전문 행정사는 "일반 중학교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으면 가해 학생에게 최대 출석정지 처분까지 내릴 수 있는 사안이다. 특히 가해 학생 1명만 벌점 1점을 받았다는 건 굉장히 낮은 수준의 처벌"이라며 "폭대위 위원 구성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학교가 학폭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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