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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 10년...끝나지 않은 이야기

2017-09-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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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다.

오는 21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끝나지 않은 이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CJ 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한 이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이다.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 채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미 의회 공개 청문회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실제 청문회 당시 2명의 한국인 할머니와 함께 증인으로 참석해 눈물로 절규했던 네덜란드 출신 위안부 피해자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 증언까지 스크린에 고스란히 담겼다.

일본군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할 때까지 '위안소'를 설치했다.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명목이었다.

일본군 위안부를 연구해 온 요시미 요시아키(よしみよしあき) 일본 주오(中央)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위안부’에 강제 동원된 여성 수는 최소 8만 명에서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 조선인 여성 비율은 무려 절반이 넘는다.

그간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 초 국내 여성운동이 성장하면서 수면에 올랐다. 이후 아시아 여러 피해국으로 전파됐다.

UN은 일본에 진상 규명과 사죄·배상, 책임자 처벌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 권고를 무시하고 사실 자체를 왜곡했다. 이에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중국 교포들은 강하게 문제 제기를 했다.

일본계 미국인 마이클 혼다 하원의원이 앞장섰다. 혼다 의원을 필두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미 하원 의원들이 일본 정부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을 의회에 제출했다. ‘위안부 사죄 결의안’은 일본 정부의 공식 시인과 사과 및 역사적 책무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다.

2007년 위안부 사죄 결의안 통과 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한 마이클 혼다 의원  / 이하 연합뉴스
2007년 위안부 사죄 결의안 통과 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한 마이클 혼다 의원 / 이하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 세계 주목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청문회였다. 2007년 2월 15일 사상 첫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가 열렸다. 고(姑) 에니 팔레오마배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 위원장은 혼다 의원의 상정을 받아들여 사상 첫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 개최에 동의했다.

고(姑) 에니 팔레오마배가 미 하원 의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고(姑) 에니 팔레오마배가 미 하원 의원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청문회가 열리기까지는 숨은 영웅들의 노력도 있었다. 뉴욕 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이었던 김동석 이사를 중심으로 한 재미 동포들, 미주한인 시민참여센터(KACE)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 등에 전면광고를 6차례나 게재했다. 미국 하원 의원들의 지역구 유권자도 설득해 의원들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청문회에는 실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고(姑) 김군자 할머니를 비롯해 네덜란드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가 증인으로 참석해 일본군 만행을 적나라하게 증언했다.

이용수 할머니 증언 내용이다.

"1944년 16세 때 대만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3년 동안 일본의 성 노리개 노릇을 했다. 하루에 4~5명의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했다.

몸은 완전히 망가졌지만 살아서 일본군의 이러한 가혹행위를 알려야겠다는 일념이 생겼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중풍에 걸려 있었고, 어머니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제사를 지내는 등 실성했었다"

고 김군자 할머니 증언이 이어졌다. 김 할머니는 1942년 강원도 철원에서 심부름을 갔다가 17살에 일본군에 끌려갔다.

"일본군에 끌려 중국 훈춘으로 간 뒤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본군을 상대했으며 성폭력을 거부했다가 죽도록 얻어맞아 고막이 터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전 세계를 향해 용기 있게 외친 진심의 목소리였다. 미국 하원은 사상 첫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시켰다.

미 의회 공개 청문회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고(姑) 김군자,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
미 의회 공개 청문회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고(姑) 김군자, 얀 러프 오헤른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통과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결의안 통과의 주역들은 물론, 적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타계했다. 지난 7월 23일 고 김군자 할머니가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28일에는 고 하상숙 할머니가 별세했다.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36명(국내 35명, 국외1명)뿐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이야기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자세히 알지 못했던, 혹은 알면서도 침묵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시 한 번 수면에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통과됐던 2007년 이야기를 휴먼 코미디 장르 안에 녹여냈다. 누구나 함께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영화로의 미덕도 지닌다.

전 세계 앞에서 용기 있게 증언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진취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주며 지금의 우리를 돌아볼 기회를 전한다.

home 박민정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