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 1000만 시대... 한참 뒤쳐진 '반려견 문화'

2017-11-2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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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한테 '너는 문제아야'라고 낙인찍으면 착한 아이도 문제아가 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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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20대 여성이 시바견에 얼굴을 물려 13바늘을 꿰맨 사건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온라인에서는 반려인과 비반려인 사이에 댓글 논쟁이 붙기도 했다. 개를 키우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요즘 반려견 문화에 불만이 많다.

비반려인들은 밖에서 개와 마주치면 긴장감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일부 비반려인들은 "사람을 문 개는 무조건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견주 처벌을 강화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반려인들은 '도그포비아(개 공포증)' 탓에 반려견 산책조차 눈치 보인다고 토로한다. 지난 6일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에서는 20대 여성이 입마개 채우지 않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가 행인에게 뺨을 맞는 일도 있었다. 쓸데없이 개를 만지거나 자극하는 등 기본적 상식이 없는 이도 많다고 반려인들은 불평한다.

시바견에 물려 13바늘 꿰맨 20대 여성 사진 / 뉴스1
시바견에 물려 13바늘 꿰맨 20대 여성 사진 / 뉴스1

전문가들은 반려인 1000만 시대지만 반려동물 문화는 한참 뒤떨어졌다고 지적한다. 이찬종 이삭애견훈련소 소장은 최근 반려인과 비반려인 간 갈등에 대해 "반려견 시장 규모는 늘어났지만 '페티켓(펫+에티켓)' 등 반려견 문화는 성장하지 못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반려견 시장 규모는 약 2조 원에 육박하며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반려견 시장이 양적으로 빠르게 팽창하고 있지만 반려인과 반려견에 대한 교육은 사실 전무한 상태다. "지나가는 개 만지지 말기" 등 행인들이 지켜야 할 에티켓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유럽 여러 국가,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반려견 사회화' 교육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어린아이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것과 비슷해서, 반려견 성격이 결정되는 생후 4개월 이내에 사회화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화가 잘 된 개는 목줄이나 입마개를 하지 않아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반려견 사회화'를 의무화한 법이 없다. 특히 맹견은 특별 관리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서는 아무나 맹견을 키울 수 있다. 목줄이나 입마개를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5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다.

반려견뿐 아니라 반려인도 교육 대상이다. 반려동물 선진국에서는 반려인에게 페티켓을 충분히 이해시켜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강도 높은 규제가 따른다. 이찬종 소장은 "패티켓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한 다음에 강력한 제재를 해야 반려인들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려견 물림 사고'는 지난해 1019건, 올해 8월 기준 1046건에 달한다. 하지만 반려견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은 무겁지 않다. 견주가 반려견 목줄을 매지 않은 경우 과태료는 처음 적발 시 5만 원, 2차 7만 원, 3차 10만 원에 그친다.

반려동물 선진국에서는 '아무나' 반려인이 될 수 없다. 스위스에서는 반려견을 키우기 전 필기, 실기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아일랜드에서는 '개 면허증'을 가진 16세 이상만 반려인이 될 수 있다. 독일에서도 개를 키우려면 '반려견 자격증'이 필요하다. 영국, 미국 등에서 맹견을 키우려면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동물법 이야기' 저자 김동훈 변호사는 "반려인들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처벌 수위를 강화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모든 반려견을 등록시키고 정부가 반려인을 상대로 교육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하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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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도 반려견이 '이웃'이 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반려견에 대한 기본적 상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찬종 소장은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도 에티켓을 지켜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소장은 "개를 보고 귀엽다고 아는 척을 하거나 만지지 말아야 한다"라며 "함께 살아야 하지 않나. 비반려인도 지킬 건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귀여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도 문제라고 한다. 이찬종 소장은 "비반려인은 입마개를 착용한 개를 보고 '사람을 무는 개'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데 개들은 사람들 인식에 따라 학습된다. 얌전한 개들도 오히려 공격적인 성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착한 아이한테 '너는 문제아야'라고 낙인찍으면 착한 아이도 문제아가 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빠르게 팽창하는 '반려견 사회'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황이다. 반려견에 물려 사람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정부와 지자체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을 내놨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과태료를 1차 20만 원, 2차 30만 원, 3차 50만 원으로 높이겠다고 했다. 경기도는 15kg이 넘는 개에 대해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부산 진구는 반려견을 다섯 마리 이하로 제한하는 조례안을 내놨다.

실정에 맞지 않는 대책이 쏟아지면서 논란은 오히려 가중됐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15kg 정도 되는 대형견을 키우는 이모(남·29) 씨는 "14.9kg이었던 개가 15.1kg이 되면 공격적인 성질로 바뀐다는 거냐"라고 의아해했다.

부산시에 사는 김환희(여·25) 씨는 "반려견을 제재하는 강력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지만 반려견 수를 제한하는 건 너무 핀트가 나가지 않았냐"고 했다. 김 씨는 "개를 키우지 않는데도 반려견이 5마리 넘으면 버려야 하나 싶어 어이가 없더라"고 덧붙였다.

김동훈 변호사는 "동물을 생명체로 보지 않아 이런 대책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변호사는 "물건이라면 중량을 기준으로 할 수 있지만 동물은 생명체다. 사회적 환경이나 개가 가지고 있는 성향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개를 물건으로 취급하다 보니 이렇게 일률적인 대책이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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