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안 돼”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낙태죄 폐지 반대에 나섰다

2017-12-0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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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반대 주장은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기초한 천주교의 생명존중 사상에서 출발한다

이하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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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낙태죄 폐지와 폐지반대 요구가 대립하는 가운데 천주교가 3일 전국 성당에서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며 낙태죄 폐지 반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낙태죄는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과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성경 구절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천주교는 따라서 낙태죄 폐지의 반대가 현대사회의 생명경시와 위협에 반대하는 '생명운동'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 논란의 발단은 지난 9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유도약(미프진)을 합법화해달라'는 내용의 글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오르면서다. 한달간 이에 동조한 사람이 23만명에 달하자 청와대가 "내년에 실태조사를 진행해 현황과 사유를 정확히 파악하고, 결과를 토대로 관련 논의를 진전시키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더욱 뜨거워졌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측은 "완전한 피임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여성에게만 죄를 묻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천주교는 지난달 28일 전국 16개 교구에서 100만인 서명운동 협조요청 공문을 보냈고, 3일 서울 명동성당의 주일미사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은 “낙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끔찍한 폭력이자 일종의 살인행위”라며 낙태죄 폐지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미사 후 염 추기경은 명동성당 꼬스트홀 앞에 마련된 부스에서 첫 번째로 서명함으로써 천주교의 낙태죄 폐지 반대 의지를 보여주었다. 천주교는 서명운동과 함께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낙태죄 폐지 반대 청원을 올리고 애플리케이션과 큐알(QR)코드 등을 활용한 청원동참 방법을 신자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4일에는 서명운동을 교회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로 확대할지 여부를 논의했다.

낙태죄 폐지 반대 주장은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에 기초한 천주교의 생명존중 사상에서 출발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가톨릭은 1세기부터 낙태를 자동파문에 이르는 죄악으로 간주하고 있다. 특히 죄는 낙태를 한 여성뿐 아니라 낙태 결정을 도운 배우자와 수술을 실행한 의료진을 비롯해 연루된 모든 이들에게 적용된다. 수정되는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하기에 낙태는 살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살, 치료받을 수 있는 경우인데도 택한 안락사,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 사형제도 에도 반대한다.

"여성만 죄냐" "키울 능력도 없는데 낳아야 한다는 거냐"는 낙태죄 반대 의견에 천주교 측은 "생명을 낳아 기르는 것까지 교회가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 불가피하게 낙태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 사형제의 경우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사형제 폐지국에 가깝지만 사형수는 존재하기에 이 역시 폐지하고 사형을 감형없는 무기징역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줄기세포 연구의 경우 성체(성인)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배아를 이용한 연구는 반대한다. 여러 개의 수정한 배아를 실험에 이용하거나 남은 배아는 버리는데, 이들 배아는 모두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이 천주교의 입장이다. 안락사 역시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정당한 절차를 거쳐 중단하는 경우가 아닌,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안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천주교는 낙태나 사형제 뿐 아니라 환경파괴도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반대한다. 개발이나 원전건설 등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의 미래까지 위협받는 것을 생명에 대한 경시와 위협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주교는 낙태죄 등을 저지른 이들을 회개하도록 이끄는 것 역시 중시한다. 천주교 관계자는 "저질러서는 안되는 죄지만 고통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사목자로서 관심을 갖고 위로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이는 사목적 관점일 뿐으로, 낙태죄가 죄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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