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반용 크레이트가 차로 따지면 롤스로이스급” 자코메티 전시 설치 내막

2018-01-15 17:30

add remove print link

자코메티 걸작 '걸어가는 사람'이 한국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 석고 원본, 1960 / 이하 전성규 기자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 석고 원본, 1960 / 이하 전성규 기자

"도대체 저 크기 조각상을 한국까지 어떻게 들여왔을까?"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작품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런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크기는 188cm에 달하지만 그 재질은 연약하기 그지 없는 석고다.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리면 앙상한 팔다리가 '뚝' 하고 부러질 것만 같다.

'걸어가는 사람' 석고 원본 작품은 현재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공개되고 있다. 지난 9일 공식 개막한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에서 야심차게 내세운 주요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원본이다. 이 석고본을 떠서 만든 청동상 6점 중 한 점이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대략 1200억원 가치에 낙찰됐다. 당연히 원본 작품 자체는 그보다 훨씬 희귀한 가치를 지닌다. 이 때문에 '걸어가는 사람'은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여러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자코메티 재단장 까뜨린느 그레니에
자코메티 재단장 까뜨린느 그레니에

전시 주관사 코바나컨텐츠에 따르면 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자코메티 파리 재단은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결국 한국에 이 작품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코바나컨텐츠 김건희 대표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북한 상황과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자코메티 재단에서 ('걸어가는 사람' 전시 허락을) 마지막까지 망설였다"고 말했다.

자코메티 파리 재단장 까뜨린느 그레니에(Catherine Grenier)는 지난 9일 위키트리와 인터뷰에서 "'걸어오는 사람' 석고 작품은 약 1년 반 전에 어렵게 복원한 것이다. 그래서 재단 밖으로 내보내는 일은 흔치 않다"고 말했다.

그레니에 재단장은 "작품 보존에 있어 아주 철저한 관리와 주의가 필요했다"며 "한국에 전시하기 위해 특별한 절차를 마련했다. (운반용) 크레이트가 차로 따지자면 롤스로이스 정도로 최상급"이라고 설명했다.

크레이트(crate)란 예술작품을 운송할 때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작품을 일정한 틀에 고정시키는 보관용 목상자를 말한다. 코바나컨텐츠 윤혜정 큐레이터는 "'걸어가는 사람'은 특히 중요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중으로 크레이트를 감쌌다"며 "'걸어가는 사람' 작품 크기가 총 188cm인데 최종 크레이트 크기는 2m가 넘었다"고 말했다.

겉모양은 나무로 똑같지만 작품 크기만큼 크레이트 크기도 제각각이다. 회화나 드로잉 작품 크레이트는 내부가 평면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조각 작품 크레이트는 내부가 조각품 모양대로 딱 맞게 틀이 구성돼 있다. 윤혜정 큐레이터는 "예를 들어 TV와 같은 전자제품을 살 때 종이상자 안에 TV 모양에 맞게 스티로폼이 내장되어 있는 것처럼 크레이트 안에도 비슷한 고정틀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크기의 크레이트 / 셔터스톡
다양한 크기의 크레이트 / 셔터스톡
대리석 조각상을 옮기는 과정 / 인스타그램 @hignellgallery
대리석 조각상을 옮기는 과정 / 인스타그램 @hignellgallery

작품 운송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자코메티 파리 재단 측이 담당한다. 지난달 중순 즈음 자코메티 재단 큐레이터 2명과 운송회사 직원 6명은 작품들과 함께 화물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화물기에서 내린 크레이트는 공항 창고에 보관돼 있다가 트럭으로 옮겨져 예술의 전당으로 운송된다.

예술의 전당으로 옮겨졌다고 바로 작품 설치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윤혜정 큐레이터는 "재단에 따라 다른데, 이번 자코메티 전시의 경우 현지에 도착하고 24시간 이상 휴식시간을 가진 뒤 크레이트를 열도록 재단과 계약했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한국은 공기 중 온도와 습도가 다르다. 작품이 현지 환경에 먼저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휴식시간을 거치면 본격적으로 크레이트를 열고 작품을 꺼내 전시실에 설치한다. 이 과정은 보안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참관하는 사람 수가 엄격히 제한되고 개인 사진 촬영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하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내부전시실 / 사진 = 전성규 기자
이하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내부전시실 / 사진 = 전성규 기자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은 오는 4월 15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 해설은 김찬용 도슨트가 맡고 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home 박혜연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