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이 아닌, 내면의 상처를 보는 조각가” 국내 최초 알베르토 자코메티 걸작선

2018-01-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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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는 고통과 상처를 통해 인간 내면을 탐구했으며, 변하지 않는 본질을 포착하려고 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 코바나컨텐츠 제공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 코바나컨텐츠 제공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모든 사물의 비밀스러운 상처를 발견해, 그 상처로 그들을 비춰주려는 듯하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장 주네(Jean Genet)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1901~1966) 작품을 보고 한 말이다.

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는 코바나컨텐츠와 위키트리가 공동 주관하는 '현대 조각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곳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조각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이 지난달 21일부터 국내 최초로 전시되고 있다. 이번 한국특별전은 1940년대 후반 이후 자코메티 전성기 시절 작품들이 대거 들어온 데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한 석고 원본 작품 15점이 포함돼 기대를 높이고 있다.

코바나컨텐츠 김건희 대표 / 이하 전성규 기자
코바나컨텐츠 김건희 대표 / 이하 전성규 기자

코바나컨텐츠 김건희 대표는 "석고 작품은 계속 똑같이 주조할 수 있는 청동상과 달리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고, 거장이 마지막으로 예술혼을 쏟아넣은 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며 "이 석고 작품을 한국에 들여오기 위해 직접 자코메티 파리 재단을 찾아갔다"고 강조했다.

김건희 대표는 "석고 작품 중에서도 특히 '걸어가는 사람'과 자코메티의 유작 '로타르상'을 들여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북한 상황과 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자코메티 재단에서 마지막까지 망설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 두 작품을 한국에 전시할 수 있게 됐다. '걸어가는 사람'과 '로타르상' 두 석고 원본이 함께 전시된 것은 사상 최초"라고 설명했다.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 석고 원본. 1963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 석고 원본. 1963

'걸어가는 사람'은 자코메티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대작으로, 크기는 180cm에 이르지만 인간 형상을 뼈대만 남기며 최소한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건희 대표는 "'걸어가는 사람'은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질문을 응축해놓은 작품"이라고 평했다. '걸어가는 사람' 청동상 6점 중 한 점은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당시 최고가 낙찰 기록을 세웠다. 조각품으로는 가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자코메티는 뼈대에 살을 덧붙이기보다 반대로 계속 덜어내는 방식을 썼다. 김건희 대표는 "자코메티는 조각에 어떻게 하면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고민했던 작가"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켈란젤로나 로댕은 살아있는 듯한 인체미를 강조했지만 자코메티는 모든 형태를 부숴버리고 대신 인간의 본질과 내면에 있는 고통을 표현하려고 했다. 조각에 대한 접근방식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걸어가는 사람'만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명상특별관을 마련해 관람객들에게 더욱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어둡고 조용한 원형 공간 안에서 작은 노란 조명 아래 관람객들은 외로이 걸어가는 앙상한 형상을 마주하게 된다. 주변에 놓여진 방석 위에 앉아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로타르상, 1965~1966
로타르상, 1965~1966

"화산에서 갓 태어난, 제대로 식지 않고 아직 용암이 흘러내리는 끈적한 괴물"

- 자크 뒤팽(Jacques Dupin)

'로타르상'은 사진작가 엘리 로타르를 모델로 자코메티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작업하다 남긴 작품이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로타르 초상을 작업하기 시작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자코메티 사후 동생 디에고는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석고 원본으로 청동상을 주조해 형 무덤에 놓았다. '로타르상'은 현재 머리 왼쪽 뒷 부분과 귀 한 쪽이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엘리 로타르는 사진작가로 상당한 명성을 누렸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탄의 길을 걸었다. 술과 마약에 빠져들었고 심지어 카메라를 저당잡히기도 하는 등 재능을 썩히며 근근히 살았다.

김건희 대표는 "자코메티는 로타르를 보고 '인간은 죽음 앞에 서면 누구나 패배자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로타르의 슬픈 시선은 자기 자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자코메티는 죽음에 대해 강렬한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스무 살 때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어느 네덜란드인 노신사를 만난 자코메티는 이후에도 이 노신사 요청에 따라 함께 또 여행을 떠나게 된다.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난 첫날 노신사는 공교롭게도 감기에 걸렸다. 이상할 정도로 급격히 병세가 악화된 노신사는 다음날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날 밤 자코메티가 지켜보는 가운데 노신사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 이 사건은 자코메티에게 충격으로 남았다.

"그날 이후 난 전등불을 켜 두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어쩌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덧없음... 인간이 한 마리 개처럼 죽어버릴 수 있다니…"

- 장 클레이(Jean Clay), <알베르토 자코메티>, 1963

작가 장 클레이는 자코메티가 "인생무상 사상의 전도자였으며, 불변하는 것을 열렬히 숭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코메티는 끊임없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 있음을 성찰했다. 다른 예술가들이 추상 미술 유행을 좇는 가운데서도 실존 모델을 고집했다.

자코메티는 고통과 상처를 통해 인간 내면을 탐구했으며, 변하지 않는 본질을 포착하고자 수없이 그림을 그리고 조각했다. 그 때문인지 자코메티가 만든 두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묘한 위로가 느껴지기도 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은 오는 4월 15일까지 열린다. 도슨트 운영은 하루 4번, 오전 11시 30분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진행된다.

home 박혜연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