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지내는 명절 더 서글퍼"…고독과 싸우는 홀몸노인들

2018-02-1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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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127만명(18.8%)은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홀몸노인이다.

(청주=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 사는 손모(83) 할머니는 설 연휴가 달갑지 않다.

흩어져 살던 가족이 오랜만에 모여 정을 나누는 시간이라지만, 그의 허름한 집에는 찾아올 사람도, 기다려줄 사람도 없다.

음식 만드는 홀몸노인 / 이하 연합뉴스
음식 만드는 홀몸노인 / 이하 연합뉴스

10여년 전 남편과 사별한 그는 환갑 줄에 접어든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사업에 실패하면서 연락이 끊겼고, 이따금 찾아오는 막내딸도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 얼굴만 비추고 가는 정도다.

그의 집에 드나드는 유일한 손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 말벗이 돼주는 복지관의 생활관리사다.

그러나 설 연휴에는 그마저 발길이 끊긴다. 설렘과 즐거움으로 가득해야 할 명절이 오히려 외롭고 힘든 시간이 된 지 오래다.

이번 설도 그는 온기 희미한 방에서 TV를 친구 삼아 지독한 고독과 싸워야 한다.

그는 "평소에는 복지관을 오가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만, 명절에는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져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며 "설 연휴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학수고대 한다"고 서글픔을 표현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서 혼자 생활하는 이모(79) 할아버지도 명절이 다가오면 뼛속까지 파고드는 허전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공무원 출신인 그는 다달이 나오던 연금을 깨 병든 아내 치료비로 모두 썼다. 2년 전 아내가 세상을 뜬 뒤 허리까지 성치 않은 상태에서 지금의 컨테이너 주택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다. 한 달 생활비는 20만6천원씩 나오는 기초연금이 전부다.

면사무소 복지팀과 이웃들이 가져다주는 김치와 밑반찬으로 하루 두 끼 허기를 달래면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는 중이다.

그는 "아들 둘이 있는데, 사는 게 팍팍해 연락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다"며 "아내 장례식에 왔던 게 마지막"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명절에는 마을회관이 문을 닫고, 돌보미 방문도 끊겨 더 외로워진다"며 "썰렁한 방안에 갇혀 지내다 보면 인생을 잘 못 산 것 같아 왈칵 눈물이 돌 때도 있다"고 말했다.

명절 귀성 행렬
명절 귀성 행렬

가족 없이 혼자서 생활하는 홀몸노인들이 극심한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선물 꾸러미를 들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흩어져 살던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풍경은 다른 세상 얘기처럼 공허하게 느껴진다. 딱히 갈 곳 없이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보면 가슴 밑바닥에 똬리 틀고 있던 외로움이 고개를 쳐들어 눈물을 솟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청주 상당노인복지관의 김미영(43) 사회복지사는 "명절이 되면 말수가 줄어드는 등 우울감을 드러내는 홀몸노인이 적지 않다"며 "가족을 그리워하거나 자신만 외톨이라는 상실감 때문에 겪는 명절증후군"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67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3.2%에 달한다. 이중 127만명(18.8%)은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홀몸노인이다.

이 수치는 2011년 101만8천명에서 2013년 110만7천명에서 2015년 120만3천 등 한해 4% 이상 급증하는 추세다.

충북만 해도 같은 해 기준 홀몸노인 인구가 6만6천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고령화로 홀몸노인 수는 빠르게 늘어나지만, 행정서비스는 이를 따르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에서 방치되는 노인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충북도와 일선 시·군이 홀몸노인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복지제도는 돌봄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매주 1차례 노인가정을 방문해 생활상태 등을 점검하고 2∼3차례 전화로 안부를 챙기는 제도인데, 현재 1만1천200명(16.9%)이 이 서비스 받는다.

홀몸 노인 급증
홀몸 노인 급증

안전에 이상이 생길 경우 119에 자동 연결되는 응급안전 알림서비스가 4천500명에게 제공되고, 홀몸노인 친구 만들기 사업도 300명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노노케어(老老care)' 사업인 '9988 행복지키미'도 3만1천400명에게 제공된다. 여기에다가 식사 배달이나 경로식당 운영 급식사업까지 합치면 산술적으로 5만명 가까운 노인이 복지제도 그물망 안에 들어있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녹록지 않다.

옥천의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이 할아버지의 경우도 '위기의 노인'으로 분류되지만, 돌봄서비스 말고는 이렇다할 지원을 받지 못한다.

옥천군 동이면의 윤은영 맞춤형 복지팀장은 "거동하는 데 큰 불편이 없고, 장기요양등급도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딱히 돌봐줄 방법이 없다"며 "민간단체와 연계해 연탄이나 식료품 세트 등을 지원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홀몸노인 가운데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많다. 50만원 안팎인 정부지원금으로 생활하다 보니 건강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북도 노인정책과 신응섭 주무관은 "홀몸 노인은 자녀의 형편도 여의치 않아 아예 연락을 끊고 사는 경우도 많다"며 "사각지대에서 방치되는 노인들이 없도록 해마다 2중·3중의 복지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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