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교과서에서 이윤택·오태석 작품 빠진다 (집필진 인터뷰)

2018-02-2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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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학기부터 '연극'은 고등학교 보통교과 일반 선택 과목으로 들어간다.

기자회견에서 사과하는 이윤택 연출가 / 전성규 기자
기자회견에서 사과하는 이윤택 연출가 / 전성규 기자

오태석(77), 이윤택(65) 연출가 작품이 연극 분야 교과서에서 빠진다.

23일 오세곤 순천향대 연극무용학과 교수는 위키트리에 "2018년부터 쓰기로 한 고등학교 '연극' 교과서에 오태석, 이윤택 연출가 작품이 포함됐다"라고 말했다. 오세곤 교수는 "당장 수정은 어렵지만 개정판에서 해당 작품을 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오세곤 교수에 따르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은 ▲햄릿(이윤택) ▲벚꽃 동산(이윤택) ▲태(오태석) ▲로미오와 줄리엣(오태석) 등이다. 오 교수는 "교과서 본문은 아니지만, 자료 QR 코드 안에 연희단거리패 '갈매기' 공연 영상도 삽입됐다"라고 말했다.

오세곤 교수는 "집필진끼리 설 연휴 내내 회의했다"라며 "연희단거리패 공연을 모두 빼야 하는지, 이윤택 연출가 작품만 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오갔다"라고 밝혔다. 오 교수는 "(오태석, 이윤택 연출가 외) 또 다른 사례가 나올 수도 있어서 신중하게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교과서는 정확하게 예민하게 기술해야 하는 책이다"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오태석, 이윤택 연출가 성폭력 사태에 대해 "깜짝 놀랐다. 참담한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 사건이 연극계에 중요한 계기로 작동할 듯하다"라며 "스스로에 대해 엄격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22일 고등학교 '연극' 분야 교과서 집필진 10명은 오태석, 이윤택 연출가 성폭력 사태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집필진은 "연극은 협동 예술이다. 여럿이 할 일을 나누어 소통하고 협력하며 아름다움을 창출한다"라며 "2018년 1학기부터 '연극'은 고등학교 보통교과 일반 선택 과목으로 들어간다"라고 설명했다.

집필진은 "2015년 9월 개정 교육과정 발표 후 교육부 계획에 따라 2018년 사용을 목표로 '연극' 분야 교과서를 집필했다"라며 "3개 과목(연극의 이해, 연기, 연극 감상과 비평) 편집, 인쇄, 배포를 완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집필진은 최근 불거진 연극계 성폭력 사태를 언급했다. 이들은 "집필자들 보람과 희망을 단번에 날리는 참담한 사실이 드러났다"라며 "문제 인물과 그들이 주도한 작품들이 교과서에 실려 배포까지 됐다"라고 털어놓았다.

집필진은 "이미 교과서를 배포한 상태라 올해 당장 수정은 어렵다"라며 "내년 사용할 교과서는 문제 작가와 작품을 삭제한 개정판으로 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집필진은 "당국 조처와 별도로 담당 교사들을 파악하여 협조를 요청하고 정오 수정이 교육 지침을 전달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난 14일 극단 미인 김수희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이윤택 연출가 성폭력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연극 예술가들은 앞다투어 '#MeToo(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미투'는 성폭력 경험을 털어놓고 가해자를 고발하는 운동이다.

지난 19일 이윤택 연출가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성추행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이 연출가는 성폭행 의혹은 부인했다.

이후 페이스북 페이지 대학로X포럼, 서울예대 대나무숲 등에서 오태석 연출가 성폭력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22일 서울예대는 오 교수를 강단에서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2015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전문교과 ‘연극’ 분야 교과서 집필진들의 입장

예술은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작품 창작의 결과만이 아닌 과정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부당한 권력과 폭력이 결부된 창작은 결코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

연극은 협동예술이다. 여럿이 할 일을 나누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연극의 집단성은 높은 교육적 효능의 원천이다. 2018년 1학기부터 ‘연극’이 고등학교 보통교과 일반선택 과목으로 들어간 것도 바로 이러한 협력의 과정을 중시한 결과이다.

2015년 9월 개정 교육과정 발표 후 교육부의 교과서 개발 계획에 2018년 사용을 목표로 전문교과 ‘연극’ 분야 중 3개 과목(‘연극의 이해’, ‘연기’, ‘연극 감상과 비평’)이 포함되었고 현재까지 집필, 편집, 인쇄, 배포가 완료된 상태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 집필자들의 보람과 희망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참담한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상호대등의 건전한 협력 관계가 아닌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과 범죄적 폭력이 만연했던 창작 현장은 비록 일부라 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연극 예술 전체의 가치를 크게 훼손시킬 위험이 크다. 더욱이 그런 문제의 인물들과 그들이 주도한 작품들이 교과서에 실려 배포까지 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집필자들로서 느끼는 절망과 우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사태에 대하여 현재 교육 당국의 입장은 이미 배포까지 마친 상태이므로 올해 당장 수정은 어렵지만 내년 사용할 교과서는 문제의 작가들과 작품들을 삭제한 개정판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필진들은 교육적 차원의 고려를 최우선시 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으며, 당국의 조처와 별도로라도 담당 교사들을 파악하여 협조를 요청하고 정오(正誤) 수정이 담긴 간지(間紙)와 참고할 교육 지침을 전달할 예정이다.

그러나 어떤 조처를 취한다 해도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진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집필진 일동은 대오각성(大悟覺醒)하고 예술은 창작하는 이들의 인성과 가치관까지 포함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 가치와 명성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 포함하여 연극 예술의 건강한 본질과 가치를 교육적으로 올바르게 전달하고자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2018년 2월 22일

2015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전문교과 ‘연극’ 분야 교과서 집필진 일동

김대현

김선애

백인식

오세곤

오은진

유덕권

이연심

이정환

이혜경

장선연

(이상 10인 가나다순)

home 권지혜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