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에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2030세대가 말하는 자코메티 전시 후기

2018-04-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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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작품에서 '살아 있는 시선'을 느꼈던 것은 이은주(23) 씨도 마찬가지다.

이하 전성규 기자
이하 전성규 기자

"내가 작업하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고통스럽고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현대조각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1901~1966)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추상 미술이 유행했던 현대 미술계 흐름 속에서 자코메티는 인간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인간 실존과 고독,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조각에 담아내려 했던 그의 노력들은 후대 걸작으로 남아 현대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특히 2030 청춘들에게는 자코메티 작품들이 한층 묵직하게 다가온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아등바등 현재를 살아내다 보면 주변과 자신을 돌아볼 틈이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최근 젊은 세대에게 남다른 울림을 주고 있다. '소확행'이나 '워라밸'을 중시하는 모습도 물질적인 성공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싶다는 바람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학 4학년이라고 밝힌 이정은(25) 씨는 "20대 중반이니까 취업과 대학 졸업만 보고 달려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삶을 돌아보거나) 그런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정은 씨는 "근래에 영화 '코코'를 봤는데 삶과 죽음을 소재로 한 내용이 나온다. 그걸 보고 나니까 시끄러운 영화관이 아니라 조용한 미술관에서도 비슷한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검색을 해봤는데 자코메티 작품이 뭔가 덧없음과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한 거라고 해서 위안받지 않을까 싶었다. 일부러 공강 시간을 이용해 전시를 보러 왔다"라고 밝혔다.

그는 "'걸어가는 사람' 작품 전시 공간이 뭔가 말 한 마디 할 수 없고 발걸음도 되게 조심하면서 걷게 된다. 시선을 바라보라고 써 있어서 시선에 집중했는데 엄청 묘했다. 제가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100% 다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만족스러운 소감을 전했다.

직장인 권경수(32) 씨도 '걸어가는 사람'을 언급했다. 그는 "저도 죽으면 어둡다는 생각을 해봤던 것 같다. 자코메티 작품에서 죽음에 대한 외로움, 고독함이 느껴졌다"라며 "자코메티도 죽음을 보고 그걸 받아들인 결과 '걸어가는 게 삶이다'라고 나름대로 해석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준엽(29) 씨는 "자코메티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둡다고 느꼈다"라며 "원래 자코메티에 대해 잘 모르고 왔는데 일생 중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설명하면서 작품을 보여주니까 작가를 이해하기가 편했다. 마지막에 '걸어가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미지가 되게 가냘프고 길었다. 그러면서도 걸어가는 모습이 확실해 보였다. 그제야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 왜 이런 작품을 하게 됐는지 와 닿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주말 데이트 겸 전시를 찾았다는 이하은(24) 씨는 "저는 '걸어가는 사람'이 다 한 것 같다"라며 웃었다. 그는 "제가 뭔가 감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각상을 봐도 잘 모르겠더라. 그냥 처음엔 주물럭 주물럭 해서 만든 느낌이랄까. 그런데 '걸어가는 사람'에서는 뚫어지게 쳐다보는 듯 살아 있는 눈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 반대로 몸은 죽은 것처럼 말라 있고, 배고플 것 같이 보인다. 그러면서도 눈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대단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하은 씨와 같이 전시를 관람한 최종현(30) 씨는 "'로타르상'이나 '걸어가는 사람' 자체에서 느껴지는 고독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눈에는 열정이 느껴졌다"라고 정리했다.

'걸어가는 사람' (1960)
'걸어가는 사람' (1960)
'로타르상' (1965~1966)
'로타르상' (1965~1966)

자코메티 작품에서 '살아 있는 시선'을 느꼈던 것은 이은주(23) 씨도 마찬가지다. 이은주 씨는 "저는 인상적이었던 게 사진작가를 모델로 한 '로타르상'이었다. 조각상 옆에 로타르 씨 사진도 같이 있지 않나. 먼저 사진에서 보이는 시선을 보고, 그 다음 조각상의 시선을 바라봤을 때 그 사람의 삶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슨트 분이 말씀하셨는데 자코메티가 그 모델을 정말 좋아했단다. 모델이 원래 정말 부자였다가 전쟁을 겪고 나서 빚이 많이 쌓이고 부정적인 환경에 놓이니까 돈을 빌리러 자코메티에게 온 거라는데 그래서인지 더 인상깊었다. 그런 삶의 굴곡을 겪고 나서 그런 눈빛을 하게 됐구나, 그리고 (자코메티는) 그 눈빛을 표현하려 했구나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최종현 씨는 자코메티 전시가 현대인에게 필요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살아가는 데 있어 먹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하고 재미와 쾌락을 추구하는 세상이 됐다. 철학은 죽은 학문이 됐고 철학자라는 직업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전시회들은 이 시대에 필요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사는가?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죽은 뒤엔 뭐가 있는가? 그런 질문을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 추세다. 공대가 더 뜨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명의 발달에 시선을 더 두고 있지 인간 자체에 시선을 두고 있지 않다는 걸 말하지 않나.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더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쁘고 힘든 삶만 지속되고 있는데 지금 이 시대에 던져야 할 질문이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은 오는 15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home 박혜연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