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디자인하다” 세트디자이너 김주현이 미국에서 주목받는 이유

2018-08-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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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디자이너' 김주현 씨는 뮤지컬, 오페라, 연극 극장 등 모든 공연의 무대를 디자인한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활동중인 세트 디자이너(Set designer) 김주현은 뮤지컬, 오페라, 연극 극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연의 무대와 세트들을 디자인한다.

그는 홀로 미국에 도착한지 6년 만에 메이저급 공연의 세트 디자이너로 활약중이다. '그들만의 세계'라 불리는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로 자리잡았다. 그의 최근 작품인 'My Fair Lady'는 지난 6월 제 72회 '토니 어워즈(Tony Awards)'에 노미네이트되어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아직은 국내에서 '세트디자이너'의 명성이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미 브로드웨이에서는 얼만큼 무대를 감각적으로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평범한 미술 학도였던 김주현 디자이너가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연업을 꿈꾸고 있거나, 세트 디자이너의 삶이 궁금할 예비 아티스트를 대신해 몇 가지 질문을 해봤다.

1. '세트 디자이너'...어떻게 직업으로 꿈꾸게 됐나요?

어머니께서 설치 미술 작가셨어서 어릴때 부터 함께 미술 작품 감상 뿐 아니라 수많은 공연을 다녔었어요. 그 때는 공연에 대한 막연한 환상 정도만 가졌었는데, 고등학생 때 입시 미술을 준비하면서 봤던 뮤지컬 '라이온 킹'이 크게 와닿았어요. 물론 전반적인 공연이 모두 좋았지만 특히 무대 디자인이 인상깊어서 그 때부터 '세트 디자이너'를 꿈꿨어요. 공연은 영화와 다르게 한정된 공간 안에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2. '브로드웨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뮤지컬, 오페라, 연극 공연에서 활동중이신데, 공연의 장르에 따라 특별히 신경쓰는 점이 있나요?

연극에서는 막이 바뀌지 않는 이상 큰 세트들이 크게 바뀌지 않아요. 극 전체가 세트 하나로만 이루어진 유닛세트(unit set)도 매우 흔하죠. 반대로 뮤지컬 같은 경우는 아주 소규모가 아닌 이상 무대 전환도 자주 해줘야하고, 디자인도 더 화려한 편이죠. 움직이는 세트들의 공간을 모두 고려하면서 디자인해야 하다 보니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해요.

오페라는 대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가수들이 따로 마이크 착용을 하지 않아서 디자인 할 때 소리가 오가는 요소는 없는지 고민해야해요. 소리를 잘 흡수하는 소재일지, 관객석과 무대 사이에 소리 전달을 방해하는 디자인 요소까지도 체크가 필요하죠.

3. 같은 작품이라도 세트 디자인의 나라별 차이가 있나요?

각 나라의 무대를 보면 극장의 스타일이나 전반적인 디자인 톤이 달라서 흥미로워요. 예를들어 브로드웨이 극장이 넓은 프로시니엄(proscenium stage)과 얕은 무대를 갖고있는 반면, 영국은 프로시니엄이 좁고 깊어요.

링컨 센터에서 공연했던 'King and I'를 영국 투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러한 영국과 미국 무대의 차이점 때문에 디자인을 수정하는 작업이 꽤 오랜 시간 걸렸어요. 무대 요소들 간의 폭과 배치가 너무 많이 달라진다면, 관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 모습과 분위기까지도 달라질 수 있어요. 디자인적으로 본다면 유럽과 독일은 미니멀하고 미래지향적인 편이고, 미국이 좀 더 전통 예술의 길을 가고 있어요.

4.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를 꼽자면?

최근 작품 중 꼽자면 'Raising Jo'라는 연극이 기억에 남아요. 비록 작은 공연장이었지만 새 연극의 프리미어 공연을 디자인 하는 일은 늘 새롭고 즐겁더라구요. 'Raising Jo'는 젊은 연인이 예상치 못한 임신을 맞닥트리면서 겪게 되는 문제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룬 연극이에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대두되고 있는 사회 문제이기도 하다 보니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볼 계기가 되더라고요.

5. 세트 디자인은 최근 어떻게 발전하고 있나요? 올해 토니 어워즈에 노미네이트된 작품 'My Fair Lady'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요즘에는 어느 한가지 스타일이 주류가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젊은 아티스트들은 실험적인 공연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고, 그와 동시에 규모가 큰 브로드웨이 극장에서는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무대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물론 금전적으로 더 여유로운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새로운 기계장치 기술을 접목해 어떠한 면에서는 더욱 새로운 공연을 만들기도 하죠.

My Fair Lady
My Fair Lady

'My Fair Lady'는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새로운 기술력을 무대에 접목시킨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세트 요소에 인위적인 원근법을 사용하고, 판으로 세운 건물들이 움직이는 등 상당히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졌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무대 장치들이 숨겨져있어요. 이 작은 장치들은 거대한 세트들을 통째로 움직여야하니 그만큼 기술력이 필요해요.

디자인은 50년대였어도 생각해 낼 수 있지만 실제로 구현되는 건 기술이 발달한 현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극장의 규모가 크고 작음에 따라 차이가 확연한 건 사실이지만, 아마 앞으로도 기술을 통한 세분화된 추세는 이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6. 브로드웨이에서 '세트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싶어하는 지망생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 한마디"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극장에서 일을 하려면 이 일을 꼭 하고 싶다는 열정이 가장 중요해요.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이죠. 다른 예술 분야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젊은 디자이너가 바로 브로드웨이에서 일을 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작은 공연부터 직접 몸으로 뛰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고, 그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해요.

밤낮 없이 일할 때도 많고,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프리랜서로 일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을 혼자 관리 해야해요. 그러다보니 스스로 일을 찾아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고 좋은 결과를 내겠다는 적극성이 꼭 필요하죠. 이러한 모든 과정들에는 압박감이 따를 때가 많아서 평소에도 스트레스를 잘 조절했으면 좋겠어요.

7. 한국에서 작품활동을 할 가능성은?

아직 한국에서 디자인 제안을 받은 적은 없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어요. 저는 무대 디자인 관련 교육을 모두 미국에서 받았기때문에 한국의 공연 시스템이나 디자인부터 실현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경험해보고 싶어요. 특히 최근 들어서 한국 전통 건축양식에 흥미가 많이 생긴터라 미국에서는 실현되기 힘든 한국적인 요소와 결합된 공연을 한국에서 꼭 한 번 디자인 해보고 싶습니다.

8. 앞으로의 활동은?

‘My Fair Lady’의 투어 공연들이 장기간 잡혀있고, 뮤지컬 ‘Into the Woods’, 연극 ‘The Heiress’, 오페라 ‘The Rape of Lucretia’ 등 각각의 공연들이 예정되어 있어서 당분간 뉴욕에서 일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링컨 센터에서 공연했었던 ‘King and I, Fiddler on the Roof’의 일본 투어 일정을 조정 중이라, 한국에서도 내후년쯤 투어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제가 가장 잘 할 수있고, 좋아하는 '세트 디자인' 일을 한국에 방문해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home 노정영 기자 njy2228@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