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악의 영화는 무엇?“ 유튜버 엉준의 '대한민국 망작 영화제'

2018-10-1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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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비판, 재미를 함께 할 수 있는 관람문화 만들고 싶어
“유튜버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난해 6월 개봉한 영화 '리얼'은 관객 수 47만 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흥행 실패뿐 아니라 작품성, 연기, 시나리오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혹평을 받으며 출연 배우의 흑역사로 기록됐다.

2018년 10월 기준 영화 '리얼'과 비슷한 수준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많다. '인랑', '물괴', '염력' 등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하고도 관객 100만 명을 동원하지 못한 작품부터 그보다는 많은 관객을 동원했지만 네이버, 다음, 왓챠 등 영화 평가 사이트에서 혹평을 받은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이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대한민국 망작 영화제' 영상을 올리며 유튜브에서 큰 관심을 모았던 1세대 영화 유튜버 엉준(여준혁)을 만났다. 영화 평론가 오동진 씨는 "넘치는 영화 리뷰 영상이 올라오고 있지만 책임을 지려 하는 사람은 드물다. 엉준은 자신의 소신과 기준을 갖고 지적하는 몇 안 되는 유튜버다"라고 언급했다.

최근 MBC '리버스 영화상'과 JTBC '방구석 1열'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에 이어 '대한민국 망작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어느 해보다 버리는 카드가 많아진 영화계에서 어떤 영화가 최악의 영화로 선정될지, 어떤 영화가 망작에 들어가는지 유튜버 엉준과 이야기를 나눴다.

1. 올해는 왜 이렇게 망작이 많을까요?

엉찌(엉준 채널 구독자 애칭)분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한 구독자께서 "엉준님 올해 망작 영화제 흥하게 하려고 망작이 쏟아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 제작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영화 전문가들을 만나 많은 얘기를 들었다. 그분들은 자본의 영향이 커지고 감독 선임 전에 기획된 작품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튜브, 엉준 Movie Review

작가주의적인 이야기보다 제작사가 원하는 틀 안에서 잘 만들 감독과 작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작품들은 감독이 정해지기 전에 레퍼런스 가이드마저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외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커졌다. 작품 내적으로도 부실한 경우가 늘었다. 작년과 올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올해 거론되는 작품만 해도 목격자, 데자뷰, 상류사회, 물괴, 인랑, 속닥속닥, 게이트 등 많다. 최종 후보를 결정하고 그가운데 수상작을 선정해야 되서 정신이 없다.

2. 그 중에서 후보군을 추려본다면 어떤 영화들이 오를까요?

유튜버 엉준이 인터뷰서 언급했던 작품들 / 이하 영화 스틸컷
유튜버 엉준이 인터뷰서 언급했던 작품들 / 이하 영화 스틸컷

작년에도 아쉬운 작품이 많았지만 자타공인 영화 '리얼'이 평론가, 관객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양상이 다르다.

사실 상반기만 해도 '7년의 밤', '챔피언', '레슬러' 등 작품이 후보에 무난히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하반기가 되면서 갑자기 후보 작품이 쏟아졌다. 앞서 말했던 '상류사회', '물괴', '인랑', '게이트', '데자뷰' 등 아쉬움이 많이 묻어나는 영화가 한꺼번에 개봉했다.

독립영화, 다양성 영화라고 관대하게 보는 것은 없다. 다만 망작 가운데 상업 영화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위키 독자들에게 '강력한 후보는 영화 ○○○입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우선 상마다 후보작 5편을 추리는 것도 어려운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엉준 Movie Review

3. '망작 영화제'를 하면서 욕먹진 않았나요?

일부 대기업이나 제작사에서 썩 좋아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일부 구독자 분들은 "불편하다", "굳이 까야되나?"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이 콘텐츠를 하면서 바라는 게 두가지 있다. 관객들이 풍자와 비판 문화에 익숙해져 관람문화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영화계에도 쓴소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Chris Stuckmann

2014년 해외 영화 유튜버 크리스 스턱만(Chris Stuckman)이 올렸던 '최근 공포 영화의 문제점(The Problem With Horror Movies today)' 영상은 260만 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하고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회자될 정도로 파급력이 있었다. 이후 북미 관객들은 공포 영화에 관해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유튜버들도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압박을 받고 있지만 내가 할 일을 하고 싶다. 내 한 마디가 사랑의 매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4. 2017년 '제1회 대한민국 망작 영화제'를 개최한 이유는?

유튜브, 엉준 Movie Review

처음엔 '영화제'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평소 교류하던 영화 유튜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악의 영화를 뽑아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작년 하반기 들면서 후보군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단순 영상에 담기엔 부족하겠다 싶어 기왕 할 거 시상식처럼 형식을 갖추게 됐다. 여러 유튜버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객관적인 입장과 명확한 기준을 갖고 영상을 만들었다. 작년에는 시상식을 영상으로만 했다면 올해는 오프라인 행사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사전 펀딩을 받아 축제처럼 즐길 수 있게 구상하고 있다.

대놓고 욕하는 마음과 앞으로 더 잘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풍자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5. 엉준이 말하는 '망작'의 기준

흔히 '망작'이라고 하면 여러 기준이 있을 수 있다. 시상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이었다. 해당 작품들은 '작품상'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어 특별한 이름을 붙여 시상했다.

영화 평론가나 관객 모두 각자의 취향이 있다. 취향을 시상의 기준으로 삼게 되면 지극히 개인적이게 된다. 그래서 시나리오, 연출 등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해서 고르게 됐다.

유튜버 엉준 / 변준수 기자
유튜버 엉준 / 변준수 기자

후보를 선정하다 보면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도 있고 연기, 스토리 전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부족한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우선 영화를 직접 보고 나왔을 때 화가 나는 작품을 후보군으로 고른다. 일부 작품들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새로 발굴해 구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다양성 영화, 독립 영화를 제외하고 상업 영화 가운데 수상작을 정하고 있다.

2018 제38회 골든 라즈베리상에 축하영상을 보낸 드웨인 존슨 / 유튜브, DC's show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배우 드웨인 존슨(Dwayne Johnson) 이야기를 했다. 그는 올해 '골든 라즈베리상'에 축하 영상을 보냈다. 드웨인 존슨 외에도 많은 배우가 이 영화제를 '신선한 소통의 장'으로 여기며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서 영화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 상을 나눠 갖는 경우가 많아졌다. 수상하는 작품들도 대중들의 기대치, 상식과 벗어난 작품이 많다. 그렇다고 신선하고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는 것도 아닌 경우가 많아 영화 관계자, 관객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엉준은 '망작 영화제'를 '빛 좋은 개살구' 영화상으로 불렀다. 골든 라즈베리상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올해부터는 '망작이지만 재밌게 본 영화'도 선정해볼 생각입니다. '길티 프레져(guilty pleasure·나쁜 줄 알면서도 재밌는)'도 필요하니까요. 많은 사람에게 자극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home 변준수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