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것도, 일본 것도 아니었다?… 사실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반전 식물

2025-02-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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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숨겨온 놀라운 콩의 비밀
세계를 사로잡은 한국의 놀라운 콩 문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소비되는 식재료 중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콩 모종 심는 농민. 자료사진. / 뉴스1
콩 모종 심는 농민. 자료사진. / 뉴스1

우리가 익숙하게 먹고 있는 ‘콩’이 바로 그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콩 하면 중국이나 일본이 먼저 떠오를 수 있지만, 사실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으로, 우리 조상들이 가장 먼저 경작하고 활용한 대표적인 식물이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부터 콩을 재배했다. 초기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500년경에는 이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콩이 식용으로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콩 재배 기원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중국 역사서로, 콩을 가리키는 '융숙(戎菽)'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융’은 중국에서 당시 오랑캐를 뜻하는 말이었으며, 이는 콩이 원래 중국에서 재배된 것이 아니라 북방 민족, 즉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유래했음을 시사한다.

이집트의 후무스, 인도네시아의 템페, 브라질의 페이조아다, 중국의 두반장, 일본의 낫또 등 세계 각국에는 다양한 콩 요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소비되는 콩의 원산지는 다름 아닌 한반도다. 학계에서는 작물의 원산지를 규명할 때 야생종의 분포 여부와 변이종의 다양성을 고려하는데,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콩의 변이종이 발견된 지역으로, 콩의 발상지임이 증명됐다.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서도 한반도가 콩의 주요 원산지라는 사실이 뒷받침된다. 기원전 1300년경 청동기 시대의 함경북도 회령 오동 유적지에서는 탄화된 콩이 출토됐으며, 중국의 역사서 '관자(管子)'에도 기원전 7세기 제나라 환공이 만주 지역에서 콩을 가져와 중국에 보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1920년대 미국이 전 세계 야생 콩 종자의 절반이 넘는 3379종을 채집했는데, 이 중 상당수가 한반도에서 발견됐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국산 콩들. 자료사진. / 뉴스1
대형마트에 진열된 국산 콩들. 자료사진. / 뉴스1

콩은 우리 민족의 삶과 깊은 연관을 맺어왔다. 한반도는 지형적으로 70% 이상이 산지로 이뤄져 있어 목축이 발달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 조상들은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육류 대신 콩을 주된 식재료로 활용했다. 콩을 기반으로 한 장류(된장, 간장, 청국장)는 한국 전통 음식의 핵심 요소가 됐고, 두부나 콩나물과 같은 음식도 오래전부터 한국인의 식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한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콩을 활용해 다양한 요리를 발전시켜오기도 했다. 장류를 비롯해 두부, 콩국수, 콩비지찌개 등 수많은 음식이 존재하며, 지금도 한국인들의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한국이 콩의 원산지라는 사실은 아직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콩이 자국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며 연구와 홍보를 지속해왔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과 관심이 부족했다. 이런 가운데 고(故) 권신한 경희대 농학과 교수는 1971년 태평양과학회의에서 ‘한국이 콩의 원산지’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데 기여했다. 당시 그가 수집한 4000종 이상의 콩 유전자원은 오늘날에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보관되고 있으며, 한국이 콩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다.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는 콩의 상당수는 외국산이며, 유전자변형(GMO) 종자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현실이다. 콩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고유의 종자를 지키고 연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콩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한반도에서 수천 년 동안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함께해온 중요한 작물이다. 이제는 한국이 콩의 원산지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전통적인 농업 유산을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수확한 콩 터는 농민. 자료사진. / 뉴스1
수확한 콩 터는 농민. 자료사진. / 뉴스1

한편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콩이 중요한 식재료로 활용되지 않았다. 유럽에 콩이 처음 전파된 것은 18세기 중반으로, 프랑스 선교사가 중국에서 종자를 가져가 파리식물원에서 재배한 것이 시초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1790년 영국에서도 재배가 시작됐고, 20세기 초에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콩 생산을 위한 시험 재배가 이뤄졌다. 하지만 서양에서 콩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였다.

전쟁 중 극심한 식량난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은 군인들에게 영양가 높은 식사를 공급하기 위해 콩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콩은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재배가 용이하고 부패하지 않아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 결과, 콩은 군대 식량으로 각광받았으며,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오늘날 콩은 건강한 식재료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백질과 식이섬유,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콩은 ‘밭의 소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 변화, 환경 문제, 식량 안보 등의 이유로 동물성 제품 소비를 줄이려는 비거니즘(채식주의)이 확산되면서 콩이 대체 단백질 식품으로 더욱 각광받고 있다.

유튜브, 이재성 박사의 식탁보감
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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