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꿈 이루지 못한 설움, 이제 고향 후배들에게 희망으로”… 88세 윤근 여사, 40억 건물 통째로 충남대에 쾌척

2025-03-19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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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할머니’ 이어 역대 두 번째 개인 기부… 파란만장 인생 역경 딛고 일군 재산

윤근 여사 발전기금 전달식 / 충남대학교
윤근 여사 발전기금 전달식 / 충남대학교
“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평생을 기구하게 살며 모아온 이 재산을 고향의 국립대학교에 기부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만 할 수 있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온갖 고생 끝에 자수성가한 여든여덟 살 윤근 여사가 평생 일궈온 4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고향에 있는 국립대학교인 충남대학교에 흔쾌히 기부하며 사회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거주하는 윤근 여사(1937년생)는 3월 19일, 충남대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김정겸 총장에게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시가 40억 원 상당의 본인 소유 6층 건물을 기증했다. 이는 개인 기부로는 1990년 50억 원 상당의 부동산과 현금 1억 원을 기부했던 ‘김밥 할머니’ 정심화 이복순 여사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금액이다.

윤근 여사의 고향은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이다. 농사꾼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두 언니와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13세에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나이에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초등학교 입학은 꿈조차 꿀 수 없었고, 농사일과 땔감 판매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남의 집살이까지 해야 했다.

17세에 결혼했지만 남편의 광산 노동으로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19세에 홀로 서울로 올라와 도자기 공장, 남의 집살이, 행상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래들이 대학을 다니는 동안 윤 여사는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옷 행상을 시작해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세 번의 유산과 남편의 폐질환, 그리고 새어머니와 두 아들을 부양하는 힘겨운 삶을 살았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지만 생활고는 여전했고, 서른 중반의 나이에 ‘부산에 가면 살기 나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단돈 500원을 들고 부산으로 향했다.

1970년 부산에 정착한 윤 여사는 가정부, 숙박업소 허드렛일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10년 만에 영도 남항 인근에 2층짜리 여관을 인수하며 숙박업에 뛰어들었다. 타향살이에도 고향을 잊지 않았던 윤 여사는 충청도 사투리를 들으면 반가워했고, 남항대교 건설 당시 여관에 묵던 충청도 노동자들에게는 따뜻한 밥 한 끼를 더 챙겨주기도 했다. 성실함과 넉넉한 인심 덕분에 여관은 번창했고, 1995년에는 6층 규모의 새 건물을 신축하며 꿈을 이루었다.

그러던 중 고향의 ‘김밥 할머니’ 정심화 이복순 여사의 기부와 별세 소식을 접한 윤 여사는 언젠가 성공하면 고향의 국립대학교에 기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30년간 여관을 운영하며 윤근 사장은 영도 일대에서 손꼽히는 자수성가한 인물로 존경받았다.

88세가 된 올해, 윤근 여사는 자신의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동남여관 건물을 충남대학교에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윤근 여사는 기증식에서 “평생 먹고살기 위해 쉴 새 없이 일하며 고생했지만, 이제라도 고향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이 돈으로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해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정겸 충남대학교 총장은 “윤근 여사님의 삶은 격동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라며 “고향을 떠나 오랜 세월 타지에서 생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여사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기부해주신 건물은 학생들의 교육 환경 개선과 인재 양성을 위해 소중하게 활용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충남대학교 발전기금재단은 윤근 여사로부터 기부받은 4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교육 시설이나 학생들을 위한 수련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home 이윤 기자 eply69@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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