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소중해 서식지마저도 천연기념물로 보호하는 한국의 멸종위기종 물고기
2025-05-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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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라지면 세계 어류 지도가 바뀌는 한국 물고기

깊은 산간 계곡의 맑고 차가운 물이 졸졸 흐르는 곳. 은빛 몸통에 자홍색 반점을 띤 물고기가 물살을 가르며 헤엄친다. 바로 열목어다. 연어목 연어과에 속하는 열목어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청정 수역에서만 살아가는 냉수성 어종이다. 한국에서는 그 희귀성 때문에 서식지마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특별히 보호받는다. 강원도 정선군 정암사와 경북 봉화군 석포면 일대는 열목어의 최남단 서식지로, 각각 천연기념물 제73호와 제74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에서 열목어가 사라지면 한반도에서의 멸종은 물론 전 세계적인 분포 범위가 북쪽으로 축소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 면에서 열목어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청정 자연과 생태계 보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열목어 몸길이는 30~70cm다. 크게 자라면 1m에 이를 만큼 제법 큰 민물고기다. 몸은 유선형에 옆으로 납작하고, 비늘은 매우 작다. 황갈색 바탕에 등은 암청색, 배는 은백색을 띠며, 몸 옆과 등에는 자홍색 또는 갈색의 작은 반점이 흩어져 있다. 치어 땐 옆면에 파 마크라는 진한 가로무늬가 9~10개 나타나지만, 성체가 되면 이 무늬는 희미해지거나 사라진다. 산란기가 되면 몸 색깔이 진한 붉은색으로 변하고, 등지느러미와 가슴지느러미는 무지갯빛 광택을 낸다. 이 화려한 변화는 열목어가 번식 준비를 마쳤음을 알리는 신호다.
열목어는 1급수 이상의 맑고 차가운 물에서만 산다. 수온은 20도 이하, 용존산소량은 리터당 9mg 이상이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이런 조건은 숲이 우거진 산간 계곡, 낙엽활엽수림이 하천을 덮어 햇볕을 차단하는 곳에서만 충족된다. 여름에는 상류의 얕은 샘터나 계곡으로 이동해 수온이 낮은 곳에서 지낸다. 이때 열목어는 수심이 얕은 곳에서 등을 물 밖으로 내밀고 눈만 물에 담근 채 아가미를 움직이는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행동 때문에 과거 사람들은 열목어가 눈에 열이 많아 차가운 물로 열을 식힌다고 여겼다. 그래서 열목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눈이 붉거나 뜨겁지 않다. 열목어가 차가운 물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는 산소 때문이다. 수온이 높아지면 물속 산소 농도가 낮아져 숨을 쉬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열목어는 연어과 물고기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닌다. 턱뼈와 입천장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1~2줄 나 있고, 옆줄은 아가미 뒤에서 꼬리까지 거의 직선으로 이어진다. 등지느러미 뒤쪽에는 기름지느러미가 있어 연어과 물고기의 상징과도 같다. 해부해보면 위의 끝부분인 유문에는 57~69개의 유문수가 위를 감싸고 있는데, 이는 소화를 돕는 효소가 분비되는 소화기관이다. 이런 신체 구조는 열목어가 강한 육식성 포식자임을 보여준다. 열목어는 하루살이, 날도래, 강도래 같은 수서곤충부터 버들치, 금강모치 같은 작은 물고기, 개구리, 옆새우, 심지어 육상곤충까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특히 가을에는 육상곤충을 많이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목어의 번식기는 4~5월 초다. 수온이 7~10도일 때다. 이때 수컷과 암컷은 물살이 완만한 여울 가장자리에서 모래와 자갈로 된 바닥을 파헤친다. 암컷이 알을 낳고 수컷이 정액을 방출해 수정이 이뤄진다. 알은 지름 3.5~4.0mm의 노란색 난황을 가진 둥근 모양으로, 자갈 사이에 묻혀 보호된다. 산란장은 지름 30cm, 깊이 5cm 정도의 원형이다. 수정된 알은 약 30 libraDays 만에 부화하며, 부화한 치어는 첫해 겨울이면 6~7cm, 1년 뒤에는 8~18cm, 2년 뒤에는 20~30cm까지 자란다. 성체는 보통 3년 이상 지나면 30cm를 넘는다. 열목어는 만 4년이 지나야 산란한다고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만 1~2년 된 어린 개체도 산란한다는 보고가 있다. 수명은 8~15년으로, 민물고기로서는 꽤 긴 편이다.
한국에서 열목어는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이자 한국 적색목록 취약종(VU)으로 지정돼 있다. 강원도와 경북 일부 지역에 제한적으로 분포하며, 북한강(고성군, 인제군, 양구군, 홍천군), 남한강 상류(평창군, 영월군, 정선군, 단양군), 낙동강(봉화군)이 주요 서식지다. 특히 정선군 정암사와 봉화군 석포면은 열목어의 최남단 서식지인 까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는다. 설악산과 오대산의 열목어도 국립공원법으로 관리된다. 1996년 환경부는 열목어를 특정보호어종으로 지정해 허가 없이 채취, 포획, 가공, 유통을 금지했고, 2012년에는 멸종위기야생동물 II급으로 격상했다. 흥미롭게도 열목어는 전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이 아니다. 시베리아, 몽골, 중국, 카자흐스탄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한반도가 열목어 서식의 남방한계선이라는 생물지리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특별히 보호받는 셈이다.
열목어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열목어는 눈에서 열이 나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함경도 지역에서는 열목어의 눈이 빨갛다고 믿었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남한의 열목어는 눈이 검다. 과거 문헌에서는 ‘여항어(餘項魚)’나 ‘세린어(細鱗魚)’로 불리기도 했다. 조선 후기 서유구의 ‘전어지’에는 한글로 ‘연목이’라고 기록돼 있다. 한치윤의 ‘해동역사’에서는 ‘이항어(飴項魚)’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를 우리말로 하면 ‘엿목’으로, 열목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학자들은 열목어라는 이름이 본래 순우리말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본다. 한글이 없던 시절, 소리나 뜻을 한자로 빌려 표기하면서 열목어란 이름이 만들어졌고, 후대에 한자의 뜻에 맞춘 이야기가 덧붙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열목어가 한국에서 멸종위기종으로 관리되는 이유는 서식지 파괴와 남획 때문이다. 고랭지 경작지 확대로 농약과 흙탕물이 하천에 유입되고, 하천 주변의 수목이 제거되면서 수온이 상승해 열목어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예를 들어, 한강 상류는 최근 고랭지 농업의 증가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개체수가 급감했다. 낙동강 상류의 봉화군 서식지는 광산 개발로 한때 열목어가 전멸했지만, 홍천군에서 개체를 옮겨와 복원했다. 남획도 큰 문제다. 플라이 낚시가 인기를 끌면서 상류에서 열목어를 잡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도 열목어의 생존을 어렵게 한다. 이런 요인들이 겹치며 한국의 열목어는 점점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열목어는 맛이 없는 물고기로 알려졌다. 연어, 송어 같은 다른 연어과 물고기와 달리 식용 가치가 낮아 조선 시대에도 양식은 드물었다. 보호종임을 떠나 굳이 잡을 이유가 없는 물고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