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면 너무 무섭다”…도심 아파트 베란다에 출몰한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도심 한복판 아파트 12층 옥상 베란다에 뜻밖의 손님이 나타났다. 주민들은 "해가 지면 너무 무섭다. 누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다"며 불안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초대 받지 않은 방문객의 정체는 놀랍게도 천연기념물 제324호이자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된 수리부엉이였다. 이 대형 맹금류가 아파트를 둥지로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SBS '동물농장'에서는 아파트 12층 베란다에 입주한 '새입자' 수리부엉이 가족의 사연이 공개됐다. 영상에는 산 근처에 자리 잡은 고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밤이 되면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수상한 존재가 담겨 눈길을 끌었다. 주민 제보를 통해 알려진 이 방문객은 생태전문가 확인 결과 수리부엉이 부부로 밝혀졌다.

보통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나 깊은 숲에 서식하는 수리부엉이가 도심 아파트를 찾은 이유는 지형적 이점 때문이었다. 야생동물 전문가 조삼래 교수는 "수리 부엉이는 자기가 재료를 물어다 (둥지를) 짓는 건 아니다. 지형지물을 그대로 이용하는데, 고층 아파트는 천적으로부터 안전하고 주변 야산에서 사냥하기 좋은 위치적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부산 해운대구, 강원도 양양, 경기 파주 등 전국 곳곳의 아파트 단지에서 수리부엉이가 발견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아파트 12층 화단 한쪽에 자리 잡은 수리부엉이 부부는 3개의 알을 낳았지만, 암컷은 그중 2개만 집중적으로 품고 있었다. 전문가 자문 결과 포란하지 않는 알은 이미 부화 가능성이 없어 인간의 개입보다는 자연 상태 유지가 최선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알이 부화하는 순간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어미 부엉이는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알껍질과 배설물까지 모두 먹어치우며 남다른 모성애를 드러냈다. 새끼 부엉이는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 전적으로 어미의 보호에 의존했다.

수리부엉이 부부의 육아 과정은 흡사 인간 가족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수컷이 사냥해 온 먹이를 암컷에게 전달하려다 거절 당하는 장면, 암컷이 직접 사냥에 나서 새끼를 먹이는 강인한 모성애, 수컷이 혼자 큰 먹이를 먹으려다 암컷에게 들켜 먹이를 빼앗기는 상황 등 부부 간의 미묘한 긴장과 역할 분담이 생생히 담겼다.

한 달이 지나자 처음에는 힘없이 누워만 있던 새끼 부엉이들은 고개를 들고 움직일 정도로 성장했다. 보통 새끼 수리부엉이는 두 달 정도면 거의 성체에 가까운 모습을 갖추고 독립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몸 길이 약 67cm, 날개를 펼치면 2m에 달하는 대형 맹금류인 수리부엉이는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 균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로 쥐, 토끼, 작은 포유류와 조류를 사냥하며, 도시 생태계에서는 쥐와 같은 유해 동물 개체 수 조절에 기여한다.

그러나 도시화와 개발로 인한 서식지 감소는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도심 출몰이 잦아지면서 반려 동물이나 길고양이와의 충돌, 시민들과의 마찰도 증가하고 있다. 수리부엉이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기 때문에 임의로 포획하거나 해를 가할 수 없으며, 발견 시에는 관할 기관이나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신고해야 한다.

특히 최근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야생 동물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수리부엉이와 같은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