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g] 시스티나 굴뚝에서 흰 연기…가톨릭 첫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 탄생

2025-05-0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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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마침내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 세계 14억 가톨릭 신자의 눈과 마음이 향한 자리,
마침내 새 교황이 탄생했다.

1. 가톨릭 첫 미국인 교황 선출. ‘레오 14세’

새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인파에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 출처: 교황청 홈페이지
새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인파에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 출처: 교황청 홈페이지

미국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이 2025년 5월 8일(현지 시각), 가톨릭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교황 즉위명은 ‘레오 14세’. 미국 출신 인물이 교황직에 오른 것은 가톨릭 역사상 처음이다.

그의 선출은 가톨릭 교회 내에서 미국 출신 교황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점에서 예상을 벗어난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P통신은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세속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 때문에 미국인 교황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해설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레오 14세를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이라고 묘사하며 이례성을 강조했다.

이번 콘클라베는 이틀째이자 네 번째 투표 만에 새 교황을 결정지었다. 선거인단 수석 추기경은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나와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우리에게 교황이 있다)”을 선언했고,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은 흰 연기와 함께 환호로 화답했다.

2. 페루 빈민가에서 로마 교황청까지…레오 14세의 여정

레오 14세는 195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소속으로 사제의 길을 걸었다. 1982년 사제품을 받은 뒤, 1988년부터 11년간 페루 빈민가에서 선교사로 활동했고, 이후 페루 시민권을 취득했다. 2015년에는 치클라요 대교구의 대주교에 임명됐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임 아래 교황청 주교부 장관까지 올랐다.

그는 영어만 아니라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며, 세계 각지 사목 현장을 오가며 교회 내 개혁에 힘써왔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기조에 발맞춰 여성 신자의 투표권 도입 등 의사결정 구조 개선에 참여했고, 주변부에 머물렀던 이들의 목소리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사목에 집중해 왔다.

외신은 그를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이라 표현하며, 빈민 사목 중심의 삶과 온건한 신학 성향, 중도적 입지에서 균형을 잡을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3. 개혁과 전통 사이…레오 14세가 상징하는 것

레오 14세의 등장은 가톨릭 교회가 직면한 시대적 과제를 반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마찬가지로 ‘주변부’에서 성장한 그는, 개혁과 전통 사이에서 새로운 조율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가톨릭 교회 내 권력이 오랜 시간 유럽 중심으로 유지돼 온 것과 달리, 이번 선출은 비(非)유럽권의 입지 강화로 해석된다. 미국은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국가지만, 가톨릭 세계에서 교황직은 오랫동안 유보적 영역이었다. 이를 깨고 미국 출신 교황이 등장한 것은, 교회가 ‘국가’보다 ‘사목 경험’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를 더 중시하게 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가 선택한 교황명 ‘레오 14세’도 눈길을 끈다. 이는 노동권과 사회정의를 강조한 레오 13세 교황을 잇는 의미로, 인공지능(AI) 시대의 새로운 사회 교리를 고민하는 교회 방향을 내포한다.

4. 교황청 중심에 성큼 다가선 한국…유흥식 추기경의 의미

이번 콘클라베에서는 한국인 성직자 최초로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유력 후보 12인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며 주목을 받았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직후 유 추기경을 포함한 유력 후보군을 소개했고,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또한 그를 예상 밖의 동양권 주자로 평가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성사시킨 인물로도 알려진 유 추기경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라는 핵심 보직을 맡아 사제 인사 시스템 개혁을 이끈 개혁 성향 인사로 평가받는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 주변부에 대한 관심, 북한 및 저개발국 지원 활동, 성 김대건 신부 성상 건립 주도 등으로 교회 내 존재감을 확장해 왔다.

비록 교황으로 선출되진 않았지만, 유 추기경이 교황 후보군에 실명으로 포함된 것은 한국 가톨릭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향후 교황청 내 한국 교회의 입지와 영향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5. 즉위 미사부터 첫 공식 메시지까지…향후 일정은?

레오 14세 교황은 선출 다음 날인 9일, 시스티나 성당에서 추기경단과 함께 첫 미사를 집전한다. 이어 11일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전 세계 신자들에게 축복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다. 12일에는 전 세계 언론과의 공식 대면도 예정돼 있다.

그는 이탈리아어로 전한 첫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로마와 온 세계에) 강복 메시지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강조하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걷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 보였다.

다음은 레오 14세 교황의 첫 공식 메시지다.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무장하지 않고, 무장을 해제시키는 평화이며, 겸손하고 인내심 있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우리 모두를 무조건 사랑하시는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두려움 없이 하느님과 손잡고, 서로 손잡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그리스도께서 앞서가십니다.

우리는 걸어가는 교회, 항상 평화를 추구하는 교회, 항상 자선을 추구하는 교회, 특히 고통받는 사람들과 항상 가까이 있으려고 노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감사드립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에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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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김규연 기자 kky94@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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