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인 줄 알았는데.... '키가 고작 3cm' 세계서 가장 작은 멸종 직전 한국 나무

2025-05-1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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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도 초희귀종이라는 한국 나무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제주도엔 세상에서 가장 키가 작은 나무가 산다. 한라산 백록담의 암벽에 바짝 붙어 자라는 이 작은 나무의 이름은 암매. 키가 고작 2~5cm에 불과하지만 그 존재감은 거대한 나무 못지않다. 매화를 닮은 흰색 또는 연한 홍색 꽃잎과 단단한 잎, 그리고 극한의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무 중 하나로 알려진 암매는 제주 한라산의 상징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된 희귀식물이다. 빙하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이 작은 나무는 학술적 가치를 넘어 자연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하지만 무분별한 채취와 기후변화로 인해 그 존속이 위협받고 있다. 암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작은 생명체가 품은 거대한 가치를 들여다본다.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는 돌매화나무목 암매과에 속하는 상록성 작은 관목이다. 높이 2~5cm 정도로 방석처럼 뭉쳐 자란다. 가는 가지에 털이 없는 단단한 잎이 빽빽하게 달린다. 잎은 길이 0.7~1.5cm, 너비 0.3~0.5cm로 혁질이며, 거꾸로 선 달걀형 또는 도란형이다. 잎 가장자리는 매끄럽고 끝은 둥글며, 밑은 뾰족하다. 잎자루 밑은 줄기를 살짝 감싸는 구조를 가진다. 꽃은 5~7월경 가지 끝의 꽃자루에 하나씩 피며, 통꽃 형태로 지름 1.5cm 정도다. 꽃부리는 흰색 또는 연한 홍색으로, 끝이 5갈래로 갈라진다. 꽃받침은 긴 원형이고, 5개의 황색 수술은 화관통부 끝에 붙는다. 열매는 지름 0.3cm 정도의 둥근 삭과다. 꽃받침에 둘러싸여 3개로 갈라지는 열매는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를 가진다.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는 한라산 해발 1700~1800m, 주로 백록담 주변의 바위틈에서 자란다. 이 지역은 암매의 국내 분포지다. 세계적으론 일본, 러시아, 북미, 그린란드에서도 발견된다. 한라산의 암매 개체군은 빙하기에 제주도가 육지와 연결됐을 때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은 암매 분포의 남방 한계선으로 여겨진다. 북한의 고산지대에선 더는 암매가 관찰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한라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자생지는 암매 보호의 핵심 지역이지만 개체 수가 적고 서식 환경이 극한적이어서 보전이 시급하다.

암매란 이름은 암벽에 붙어 자라며 매화를 닮은 꽃에서 왔다. 돌매화나무라는 별칭도 같은 이유로 붙여졌다. 이 이름은 바위에 뿌리내리고 작지만 강렬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암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무 중 하나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암매는 그 독특한 생태로 주목받는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풀보다 크고 단단한 줄기를 가진 식물로 인식되지만 암매는 이 고정관념을 깬다. 나무와 풀을 구분하는 핵심은 리그닌과 나이테다. 리그닌은 줄기를 단단하게 만드는 물질로, 나무에 존재하지만 풀에는 없다. 나이테는 해가 바뀔 때마다 줄기에 생기는 고리다. 암매는 풀처럼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리그닌과 나이테를 모두 갖고 있다. 명백한 나무다. 키가 고작 2~5cm에 불과한 이 식물은 나무의 정의를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암매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 식물이다. 이는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거나 소수만 남아 가까운 장래에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뜻한다. 한국적색목록에서는 위급종(CR)으로 평가되며, 산림청 국립수목원도 2008년 암매를 희귀식물 CR로 분류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암매를 별도로 평가하지 않지만, 국내에선 한라산국립공원의 보호구역 지정으로 관리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자연유산본부는 백록담 주변에서 암매 자생지를 확인하며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주도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I급의 67%가 분포하는 지역인데, 암매는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종이다.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의 생태는 극한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한라산 정상부의 바위틈은 강한 바람, 낮은 기온, 높은 습도 변화로 가혹하다. 암매는 이끼와 함께 바위에 붙어 자라며, 적당한 공중 습도를 필요로 한다. 줄기와 잎은 많은 물을 함유해 급격한 습도 변화에 대비한다. 꽃은 5~7일 동안만 피며, 향기가 없고 꽃가루를 옮길 곤충이 드물어 자가수정으로 번식한다. 열매 구조는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어렵게 만들어 번식이 제한된다. 천연하종발아에 의존하는 암매는 육묘나 이식이 불가능해 인공 증식이 어렵다. 이러한 생태적 제약은 암매의 희소성을 더욱 높인다.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의 활용 가치는 주로 관상용에 있다. 매화꽃을 닮은 화려한 꽃은 사진가와 식물 애호가들의 표적이 된다. 아름다움이 오히려 위협 요인이 된다. 무분별한 채취와 사진 촬영을 위한 식생 정리 등 인위적 요인은 개체 수 감소의 주요 원인이다. 자연적 요인도 만만치 않다. 암벽에 뿌리내린 암매는 태풍, 낙석, 암석 풍화, 주변 식생의 천이로 서식지를 잃을 수 있다. 기후변화는 고산지대 식물인 암매에게 치명적이다. 한라산의 온도 상승은 암매의 생존을 위협한다.

암매는 인공 증식의 어려움 때문에 자생지 관리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국립생태원은 암매를 포함한 멸종위기종 복원에 힘쓰고 있다.

암매는 학술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빙하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이 식물은 고산지대 식물의 진화와 적응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한라산의 암매 개체군은 남방 한계선에 위치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관찰하기에 최적의 사례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작은 나무 암매는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되새기게 한다.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암매 / 국립생물자원관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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