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660마리밖에 없다… 한국에선 사실상 멸종했다는 의외의 '동물'
2025-05-1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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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보기 힘들어진 '동물'
한때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분류된 동물이 있다. 전 세계 야생 개체 수는 약 660마리에 불과하다. 해외에서 들여온 개체를 제외하면, 한반도 고유종은 사실상 멸종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동물의 이름은 '황새'다.

황새는 황새목 황새과에 속하는 대형 조류다. 영어로는 ‘Oriental Stork’라 불리며, 유럽황새와 비슷하지만 독립된 종으로 분류된다. 몸길이는 110~120cm, 날개를 펴면 200~273cm에 달한다. 무게는 4~5kg으로, 유럽황새보다 약간 큰 편이다. 황새는 주로 습지, 논, 호수, 하구, 강 주변에서 생활하며,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 습성이 있다. 발에는 작은 물갈퀴가 있어 논이나 습지를 걷기에 유리하다. 울음소리는 내지 않고, 부리를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내며 의사소통을 한다.
황새는 과거 한반도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였다. 마을 근처 큰 나무에 둥지를 틀고, 논과 강에서 먹이를 찾으며 사람들과 함께 사계절을 보냈다. '고려도경'이나 조선시대 그림·자수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상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6.25 전쟁, 밀렵, 환경오염, 서식지 파괴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 1971년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서 번식하던 황새 수컷이 사냥꾼 총에 맞아 죽고, 암컷도 1983년 창경원동물원으로 옮겨졌지만 1994년 사망하면서 한반도 텃새 황새는 사실상 멸종했다.
현재 전 세계에 남은 황새는 약 2000~2500마리로 추산되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종(EN)으로 분류된다. 이 수치는 복원센터의 사육 개체까지 포함한 전체 수이며, 야생에서 생존 중인 개체만 따지면 약 660마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제199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황새는 러시아 아무르강, 우수리강, 중국 북동부 산지앙 평원 등 극동아시아에서 번식한다. 4~7월 번식기에는 물푸레나무, 소나무, 느릅나무 같은 큰 나무에 5~20m 높이로 접시 모양의 둥지를 짓는다. 둥지는 나뭇가지로 엮고, 흙과 풀로 단단히 고정한다. 암컷은 한 번에 2~6개의 흰색 알을 낳으며, 32~35일간 품는다. 새끼는 53~55일간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독립한다. 이후 약 3000km를 날아 한국, 중국 남부로 월동하러 온다. 이 이동은 약 110일에 걸쳐 이뤄진다.
황새는 육식성 최상위 포식자로, 먹이 선택이 다양하다. 주로 어류(붕어, 미꾸라지, 살치), 양서류(참개구리), 파충류(뱀), 곤충(땅강아지), 갑각류(말똥게), 작은 포유류(들쥐), 소형 조류의 새끼 등을 먹는다. 월동지에서는 무척추동물이나 벼 뿌리도 캐 먹는다. 논은 황새의 주요 먹이터다. 예산군에서는 친환경 농법으로, 둠벙과 어도를 만들어 황새의 먹이 생태계를 보존하고 있다.
황새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강한 모성애다. 대부분의 새는 약한 새끼를 포기하거나 도태시킨다. 그러나 황새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인다. 약한 새끼에게도 끝까지 먹이를 챙겨주거나, 따로 보살피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자연의 냉정한 법칙도 사라지는 건 아니다. 2020년 충남 예산군에서 야생 방사된 황새 수컷이 작은 새끼를 먹는 장면이 포착됐다. 전문가들은 새끼가 이미 죽었거나, 먹이 경쟁에서 밀린 늦둥이를 어미가 제거한 것으로 추정한다.

황새는 천적도 거의 없다. 성체는 날카로운 부리, 큰 덩치, 난폭한 성격으로 웬만한 포식자를 물리친다. 하지만 알이나 새끼는 육식동물이나 맹금류에게 노려질 수 있다. 중소형 황새는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대형 파충류, 고양이과 동물, 검은등자칼 같은 천적의 위협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의 황새 복원은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을 중심으로 1996년에 시작됐다. 해외에서 황새와 수정란을 들여와 인공 번식을 시도했고, 2004년 첫 인공 번식에 성공했다. 시간이 흘러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는 황새공원이 조성돼, 지붕 없는 사육시설(오픈장)과 생태습지에서 황새가 야생에 적응하도록 돕고 있다. 이곳에서는 미꾸라지, 붕어, 개구리 등 먹이를 제공하고, 물이 얼지 않도록 관리해 황새가 1년 내내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다.
2015년부터는 야생 방사를 시작했고, 지난 3월 화포천습지 봉화뜰에서는 3마리의 새끼 황새가 부화해 오는 9월 자연 방사를 목표로 관리되고 있다.
황새는 문화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은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내면 실패한다는 교훈을 준다. 또한 서양에서는 황새가 아기를 가져다준다는 전설이 있다. 이는 황새가 봄에 돌아와 생명의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황새는 크기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새가 아니다. 오랫동안 우리 문화와 자연환경 속에서 함께해온 존재다. 예산 황새공원을 방문하면, 하늘을 나는 우아한 황새와 그들이 머무는 환경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