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5마리 포획' 일제강점기 자행된 만행…80년대 이후 자취 싹 감춘 한국 동물
2025-05-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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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 구제 대상으로 꼽혀 대대적인 사살 피해 본 토종 동물
한반도의 오랜 역사를 함께해 온 포유류가 언젠가부터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개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명백한 맹수에 속하는 한국 토종 동물의 사실상 멸종이 이 땅에서 시작된 건 일제강점기 때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위한다며 이 동물들을 대량 사살하는 데 나섰으나 실상은 자신들의 안전과 편리함을 위함이었다. 무슨 일을 당하는 줄도 모른 채 역사적 비극에 휘말린 안타까운 사연 속의 동물은 바로 한국 늑대다.

한국 늑대는 한반도의 깊은 자연과 역사를 함께해온 포유류로, 식육목 개과에 속한다. 일반적인 개와 달리 꼬리를 항상 밑으로 늘어뜨리고 다니며 길고 굵은 다리와 넓은 머리에 비해 길고 뾰족한 코를 가진 독특한 외형을 지녔다. 개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른 점이라면 꼬리를 항상 밑으로 늘어뜨리고 다닌다는 점이다. 즉 개처럼 꼬리를 위로 구부리지 않는 것이 개와 늑대의 큰 차이점이다.
한국 늑대의 이마는 넓고 다소 경사져 있고 눈은 비스듬히 붙어 있으며 귀는 항상 빳빳이 서 있다. 지역에 따라 털의 밀도와 색깔이 크게 다르다. 한국 늑대는 만주산 늑대와 유사하지만 털이 짧고 복부와 옆구리의 털은 더욱 짧으며 몸과 목 양쪽은 털이 밀생해 부풀어 있는 모습이다. 털의 색은 모래색에서 회황색, 희미한 오백색까지 다양해 색채의 변이가 심한 편이다.
한국 늑대는 깊은 산림보다는 시야가 트인 개활지를 선호해 서식해 왔다. 짝짓기 시기는 1~2월로, 이 시기 수컷들은 암컷을 추적하며 무리를 이루는 군집 생활을 한다. 일부일처제로 암컷은 한 마리 수컷을 선택해 짝짓기를 하고 임신 기간은 약 60~62일이다. 새끼는 4~6월 사이 5~10마리씩 태어나며 대개 수컷이 암컷보다 높은 비율로 태어난다. 한국 늑대는 무리생활을 하는 사회성 강한 동물이라 과거에는 사람을 공격하는 일도 자주 발생해 민간인 사이에서는 유해 동물이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했다.

시각, 청각, 후각이 매우 발달한 한국 늑대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냄새를 통해 더 멀리서 사물을 감지할 수 있다. 이빨이 강해 짐승의 골격도 부술 수 있으며 위의 소화 능력이 강해 동물의 사체 같은 단단한 음식도 잘 먹는다. 사슴류, 멧토끼, 동물의 사체, 조류 등 다양한 동물을 포식하며 들쭉과 같은 과실도 즐겨 먹는다. 이처럼 뛰어난 사냥 능력 덕분에 염소와 같은 큰 동물도 물고 달아나며 사람조차 따라잡기 힘든 속도를 자랑하곤 했다.
역사적으로 한국 늑대는 한반도 북부와 중부 지역에서 주로 서식했으며 황해도 평산, 경북 청송면, 지보면, 삼척, 문경, 수안보 등지에서 서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늑대는 사실상 멸종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1968년 충북 음성에서 포획되고 1980년 경북 문경에서의 발견을 마지막으로 이후로는 공식적인 보고 사례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10년간 한국 늑대가 국내 야생에서 자연적으로 발견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한국 늑대가 사라진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첫 번째 원인은 무분별한 사냥과 해수구제로 꼽힌다.
일제강점기부터 늑대는 인간과 가축에 피해를 주는 해수, 즉 해로운 짐승으로 간주돼 대대적인 구제 대상이 됐다. 1915년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늑대에 의해 사람이 113명 사망하고 가축 340마리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결국 늑대에게는 현상금이 걸렸고 전국적으로 사냥이 벌어졌다. 그 결과 공식적으로 2625마리 이상의 늑대가 포획됐다. 이 시기에는 늑대뿐 아니라 호랑이, 표범 등 다른 대형 맹수들도 대량으로 사살됐다.
해수구제는 단순한 야생동물 제거를 넘어선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일본은 식민지 경영과 일본인 정착민의 안전 확보, 농경지 보호 등을 이유로 군인, 사냥꾼, 농민 등을 동원해 맹수 사냥을 벌였다. 동물의 생태적 역할이나 생태계 균형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해수구제가 조선 민심을 잠재우고 일본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두 번째 요인은 서식지 파괴와 산업화다. 전쟁과 산업화 과정에서 산림이 벌목되고 개간되며 늑대가 살 수 있는 넓은 영역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늑대는 광범위한 영역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서식지 상실은 곧 개체군 붕괴로 이어졌다. 또 늑대가 선호하는 개활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이들의 생존 공간은 점점 더 협소해졌다.
세 번째로는 먹이사슬 붕괴와 2차 피해가 있다. 1950년대 이후 전국적으로 벌어진 쥐잡기 운동은 늑대의 주요 먹이였던 소형 포유류를 급감시켰고 이 과정에서 사용된 쥐약 등 독극물로 인해 늑대가 2차 중독돼 사망하는 사례가 잦아졌다. 먹이 부족과 더불어 독극물 중독은 늑대의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네 번째 원인은 근친교배와 개체군 고립이다. 남은 늑대 개체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고립됐고 가까운 개체끼리 근친교배를 반복하면서 유전적 다양성이 급감했다. 이는 곧 번식력 저하와 질병에 대한 저항력 약화로 이어져 종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됐다. 결국 한반도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늑대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 급격히 사라졌고 야생에서는 그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다만 한국 늑대 복원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전광역시의 테마파크 ‘대전 오월드’는 오랜 인내 끝에 한국 늑대 복원이라는 결실을 봤다. 대전 오월드는 2004년부터 한국 늑대 종 복원을 위해 중국, 일본, 러시아의 협조를 진행했다. 이후 2008년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늑대 포획 및 반출 승인을 얻었고 야생 늑대 7마리를 반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늑대들은 볼가강 유역 사라토프주에서 포획된 것으로, 한국 토종 늑대인 몽골리안 울프-코레아누스의 후손들이다.
대전 오월드에선 이 늑대들을 위해 약 4000㎢ 넓이의 사육장 ‘늑대 사파리’를 건축했다. 자연 상태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을 조성한 덕분에 인공 수정 및 포육 작업 없이도 늑대끼리 짝짓기를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다 2010년 5월, 건강한 한국 늑대 새끼 6마리가 태어났다. 한반도에서 새끼 늑대가 무사히 태어난 것은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2020년 4월에도 새끼 늑대들이 태어나면서 오월드의 한국 늑대 가족은 16마리까지 늘어났다.
한국 늑대의 멸종은 단순한 동물종 하나의 소멸이 아니다. 늑대는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는 비정상적인 먹이사슬 구조와 생태계 불균형이 채웠고 이는 오늘날 다양한 환경 문제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이제 한국 늑대는 교과서 속 이야기로만 남았으며 그 복원의 가능성조차 희박한 상황이다. 과거 인간의 무지와 탐욕이 빚어낸 결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생태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