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이다…겉은 멀쩡한데 사실 속은 다 문드러졌다는 현재 전국 과수농가 상황

2025-05-2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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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갑자기 전국 휩쓴 기온 저하 현상이 원인

지난달 갑작스럽게 떨어진 기온이 전국의 과수 농가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경북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서 자두, 살구, 배, 사과 등 주요 과수에 냉해 피해가 속출했고 현장을 찾은 농민들의 표정에는 절망감이 역력했다. 특히 경북 김천과 영천, 충남 천안, 강원 정선 등 주요 과수 주산지에서는 냉해로 인한 착과 실패가 심각해 올해 수확량이 평년보다 크게 줄 것으로 보인다.

자두, 기사 내용을 토대로 AI 생성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자두, 기사 내용을 토대로 AI 생성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대구 MBC에 따르면 기온 저하가 시작된 시기는 3월 29일. 경북 김천에서는 24~28일 영상권의 기온을 유지했지만 29일부터 지난달 2일까지 닷새 동안 아침 기온이 영하 3.7~3.3도로 떨어지며 자두나무에 치명타를 입혔다.

경북은 지난해 기준 전국 자두 재배 면적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생산지이며 그중에서도 의성과 김천이 핵심 지역이다. 지난달 김천시 구성면의 자두밭은 멀리서 보기엔 푸르고 건강해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가지에 달린 씨방은 손을 대자마자 마른 꽃잎과 함께 우수수 떨어졌고 수정이 되지 않은 탓에 이미 열매로 클 수 없는 상태였다. 해당 농가는 지난해 이맘때 과도한 열매솎기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두를 30년 넘게 재배한 최판진 농민은 "열매가 지금쯤 보여야 하는데 없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자두 재배 40년 경력의 최수동 농민 역시 "꽃이 얼고 벌이 오지 않아 수정이 안 됐다"라며 "서리가 내리면 암술이 타버리는데, 그게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두 농사를 처음에 할 때는 나무 심으면 주렁주렁 달리고 나무도 잘 크고 병도 없고 이랬었는데 지금은 병도 많고 열매도 잘 안 열린다. 자연이 도와줘야 하지, 하늘이 농사 다 짓는다. 30% 사람이 한다고 하는데 30%도 못 하는 거 같다, 20%도 채 될까 말까 한다. 하늘이 지어줘야지"라고 토로했다.

자두는 품종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달라 늦게 꽃이 핀 품종이나 지형적으로 고도가 높은 곳의 밭에서는 피해가 적은 편이지만 전반적인 수확량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최수동 농민은 "작년보다 40~50%는 줄어들 것 같다"라고 했다.

살구, 기사 내용을 토대로 AI 생성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살구, 기사 내용을 토대로 AI 생성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김천뿐만 아니라 살구로 유명한 경북 영천의 살구밭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경북의 살구 재배 면적은 전국의 54.5%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영천 임고면은 전통적으로 살구 산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14일 영천 임고면 살구밭의 나무에서 열매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열매솎기는커녕 열매 달린 나무 자체가 귀한 상황이었다.

살구 농사를 짓는 최규활 농민은 "90%가 없다고 보면 된다"라며 "지금 달린 건 10%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도 마찬가지로 지난 3월 30일~지난달 2일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에 냉해를 피하지 못했다. 꽃이 필 무렵 서리가 내려 암술이 얼고 수정이 되지 않아 열매가 되기 전에 떨어진 것이다. 그나마 고도가 높은 밭은 상대적으로 냉해를 덜 입어 그나마 일정량의 수확이 가능해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심각한 피해였다.

살구 작목반 총무 최경락 농민은 "2~3일 사이 꽃이 피자마자 서리 피해를 봐서 결실이 안 된 밭이 많다"라며 "뭐 그래도 저희 밭은 이 정도라도 되면 반은 건진 셈이다"라고 말했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들은 냉해를 입은 과수일수록 나무 관리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영천시 농업기술센터 전성호 과수연구담당은 "살구가 달리지 않으면 나무는 세력이 웃자라게 돼 있다. 그래서 비료 사용을 평소보다 줄여서 시비를 해야 할 거고 대신 병해충 관리는 과일이 달리지 않더라도 (평소처럼) 동일하게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지난달 30일 경북 상주를 찾아 최근 이상저온으로 냉해 피해를 입은 배 재배농가를 방문해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농협 제공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 지난달 30일 경북 상주를 찾아 최근 이상저온으로 냉해 피해를 입은 배 재배농가를 방문해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농협 제공

이번 냉해는 경북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심각한 피해를 남겼다. 지난달 초 이상 저온 현상은 개화 중이던 사과·배 재배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농협중앙회 강호동 회장은 지난달 30일 경북 상주를 찾아 배 농가의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현장 의견을 수렴했다.

배 냉해 피해는 기온이 영하 1.7~2.8도 이하로 떨어지면 발생한다. 배꽃 몽우리 속 암술머리와 배주(밑씨)가 검게 갈변해 고사하고 수정이 불완전해 착과가 어려워진다. 간신히 수정되더라도 조기 낙과하거나 기형과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일어난다.

상주 지역은 이번 이상 저온 현상으로 심각한 냉해 피해를 입고 생육이 저해돼 수확량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강 회장은 "자연재해 피해로 애타는 마음일 피해 농업인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피해 복구와 농가 경영 안정을 위한 지원방안을 신속히 강구하고, 정부와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한 배 재배 농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열매솎기 전인데도 한 가지에 열매가 1~2개만 달려 있었다. 예년 같으면 7개 이상 달렸을 시기였지만 이곳에서도 4월 중순 눈을 동반한 기온 저하가 농가를 휩쓸었다. 천안·아산 일대 과수 농가들은 착과율이 평년보다 50% 이상 떨어졌고 기형과 발생도 빈번하다고 호소했다. 흠집이 나거나 갈라진 열매 끝부분이 튀어나오고 꼭지가 거뭇해진 배들이 그 증거였다. 강원 정선에서도 사과 냉해 피해가 확인됐다. 지난달 29일 새벽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며 수정률 저하와 착과 불량으로 이어졌고 상품성 있는 수확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역농협들에 따르면 군 내 재배면적의 70%가 넘는 170헥타르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피해다. 이런 상황에서 농가들은 기형과라도 일정량은 남겨야 하고 봉지 씌우기 등 관리 작업까지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 열매가 너무 적으면 나무 균형이 무너져 다음 해 농사에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작물재해보험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형과 등 상품성이 없는 열매도 착과수에 포함되다 보니 피해 보상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피해 산정 방식과 보상 체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home 한소원 기자 qllk338r@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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