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치에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
2025-05-2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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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펠드먼 역작 '미국의 설계자 제임스 매디슨' 출간
미국 독립의 설계자이자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 4대 미국 대통령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대작 전기가 한국에 상륙했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쓴 '더 쓰리 리브스 오브 제임스 매디슨(The Three Lives of James Madison)'이 '미국의 설계자 제임스 매디슨'(소요서가 발행)이란 제목의 3권짜리 한국어판으로 번역 출간됐다. 총 1444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전기는 매디슨 전 대통령의 삶을 헌법 제정자, 정당정치의 선구자, 전쟁 지도자의 세 국면으로 나눠 다룬다.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한국 정치판에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역작이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미국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고 권리장전을 제안하며 미국 정치체제를 설계한 핵심 인물이다. 권리장전이란 미국 헌법 수정 제1조부터 제10조까지를 일컫는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연방 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1751년 버지니아주 몬트피엘러 농장에서 태어났다. 노예를 소유한 플랜터 가문의 장남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개인 교사를 통해 교육받으며 성장했다. 건강이 약해 버지니아의 습한 기후를 견디기 어려웠던 매디슨 전 대통령은 윌리엄앤드메리 대학 대신 뉴저지의 컬리지오브뉴저지(현 프린스턴)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그의 가장 과감한 일탈은 문학 동아리에서 평범한 시를 쓰는 것 정도였다. 그의 개인사는 화려하지 않았다. 43세에 이르러서야 알렉산더 해밀턴, 마사 워싱턴, 그리고 사촌의 도움을 받아 20대 초반의 과부 돌리 페인 토드를 만나 결혼했다. 돌리는 화려한 터번을 즐기며 백악관에서 조지 워싱턴 초상화를 구해낸 인물이다. 매디슨 전 대통령의 삶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존재였다.
매디슨 전 대통령의 첫 번째 삶은 헌법 제정자로서 빛난다. 그는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서 버지니아 플랜을 제시하며 미국 헌법의 초석을 다졌다. 이 플랜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통해 13개 주를 통합하려는 그의 비전을 담았다. 그러나 주들의 이익 충돌로 그의 제안 중 일부, 특히 연방 의회가 주 법률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헌법 비준 과정에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인 알렉산더 해밀턴(초대 미국 재무부 장관), 존 제이(미국 초대 연방대법원장)와 함께 '연방주의자 논설'을 집필하며 헌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해당 논설은 85편의 글로 이뤄져 있다. 매디슨 전 대통령이 29편, 해밀턴이 51편, 제이가 5편을 기고하며 미국 정치사상사에서 기념비적 문헌으로 남았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처음엔 권리장전을 '종이 장벽'에 불과하다며 반대했지만, 이후 정치적 필요와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권리장전을 제안해 헌법에 포함했다. 이는 그의 이론적 유연성과 실용적 정치 감각을 보여준다.
두 번째 삶에서 매디슨 전 대통령은 정당정치의 선구자로 변모한다. 그는 정파주의를 억제하고자 헌법을 설계했지만, 해밀턴의 연방주의 정책, 특히 국가은행 설립에 반대하며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공화당을 창설했다. 이는 미국 정당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었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해밀턴을 월스트리트의 꼭두각시라고 비판하며, 연방주의자들이 뉴욕 중심의 자본가 이익만 대변한다고 공격했다. 1798년 존 애덤스 당시 대통령이 제정한 선동금지법에 반발해 매디슨 전 대통령은 버지니아 결의안을 통해 주들이 연방법을 '중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가 당초 반대했던 주권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변화였다. 그의 정치적 변신은 '민주 없는 공화정'에서 '민주적 공화정'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국무부 장관과 대통령이 매디슨 전 대통령의 세 번째 삶이다. 그는 제퍼슨 당시 대통령 밑에서 국무부 장관으로 일하며 영국과 프랑스 간 중립을 유지하려 했다. 영국의 미국 상선 나포와 선원 강제징집에 대응해 경제 제재를 시도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1812년 대통령이 된 매디슨 전 대통령은 영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른바 '제2차 독립전쟁'은 1814년 겐트 조약(미국과 영국 간의 1812 년 전쟁을 종식시킨 평화 조약)으로 마무리됐다. 전쟁 결과는 미미했지만 매디슨 전 대통령은 이를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승리로 포장했다. 저자는 이를 미국이 전쟁의 애매한 결과를 미화하는 선례로 봤다. 대통령 퇴임 후 매디슨 전 대통령은 몬트피엘러로 돌아가 자신의 기록을 수정하며 유산을 관리했다. 반영방주의자인 제임스 먼로가 대통령에 뽑히면서 연방주의 세력이 약화했다.
매디슨 전 대통령의 삶에서 노예제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떼놓을 순 없다. 그는 4000에이커(약 1618ha) 농장에서 100명 이상의 노예를 소유한 플랜터 가문의 출신이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노예제를 '인간을 재산으로 간주'하는 표현을 피하려 했지만,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저자는 매디슨 전 대통령의 노예 소유자 빌리를 통해 그의 모순을 조명한다. 매디슨 전 대통령을 어린 시절부터 섬긴 빌리는 펜실베이니아에서 7년간 계약직으로 노역한 뒤 자유를 얻었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빌리가 노예들에게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까 우려해 그를 버지니아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는 매디슨 전 대통령이 노예제의 부도덕성을 인식했으면서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를 유지한 모순을 보여준다.
노아 펠드먼은 책에서 매디슨 전 대통령의 사상이 어떻게 현실 정치에서 구현됐는지, 그리고 그의 유연성이 미국 정치체제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생생히 그려낸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정파주의를 억제하려 했으나, 공화주의를 지키기 위해 결국 정당정치를 제도화했다. 그는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과 깊은 우정을 유지했지만, 해밀턴과는 국가 비전에 대한 차이로 적이 됐다. 반면 먼로 전 대통령과는 경쟁 속에서도 우정을 회복하며 정치적 협력을 이뤘다. 이는 매디슨 전 대통령의 '공화주의적 화합'을 보여주는 사례다.
매디슨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유산은 헌법적 자유와 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있다. 그는 외세 위협이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보며, 존 애덤스 전 대통령의 선동금지법을 비판했다. 선동금지법은 정부를 비판하는 악의적인 글을 인쇄, 언급, 출판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했다. 이와 달리 매디슨 전 대통령은 전쟁 중에도 언론자유를 억압하지 않았다. 그의 헌법적 자유에 대한 신념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 수 있다. 언론자유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한국에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민의가 자유를 지키는 안전망이라 믿고 "인민에게 덕성과 지혜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을 포함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다.
매디슨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 자체도 한국과 미국의 현재 정치에 깊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의 경우 지역주의와 이념 갈등으로 인한 정치적 양극화가 극단에 치들은 상황이다. 매디슨 전 대통령의 헌법 제정 과정에서 보여준 타협의 정신은 한국 정치인들에게 ‘상호 양보를 통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묵직하게 던진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파벌 문제를 다루며 인간 본성상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파벌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고 했다. 그는 다수든 소수든 시민들의 공동의 이익이나 타인의 권리에 반하는 동기로 결합할 수 있다면서 다수가 파벌을 형성할 경우 공공의 선과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기도 했다. 이는 정부가 성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를 보호하는 데도 소홀해선 안 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점이 적잖다.
미국에서도 매디슨 전 대통령의 유산은 여전히 살아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적 수사와 정파적 분열은 매디슨 전 대통령이 그토록 우려했던 다수파의 전제를 떠올리게 한다. 노아 펠드먼은 2019년 하원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매디슨 전 대통령의 헌법적 자유에 대한 신념과 맞닿는다. 매디슨 전 대통령은 민의와 언론자유가 민주주의의 안전망이라고 봤는데, 이는 가짜 뉴스와 소셜미디어의 편향성 논쟁이 심화된 미국 사회에서 민의의 역할과 언론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매디슨 전 대통령의 노예제에 대한 모순적 태도는 일제 치하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의 역사적 상처를 건드린다. 매디슨 전 대통령이 노예제의 부도덕성을 알면서도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한 것은, 오늘날 한국 정치인들이 공익과 사익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매디슨 전 대통령의 모순은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존폐 논쟁에서 역사적 정의와 민주적 가치의 균형을 고민하게 한다.
노아 펠드먼은 책에서 매디슨 전 대통령의 사상이 현대 민주주의에 주는 교훈을 강조한다. 그는 매디슨 전 대통령의 헌법적 자유와 민의에 대한 신념이 정치적 위기 속에서도 국가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본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사태를 겪은 대한민국이 직접적으로 받아들어야 할 메시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보수와 진보의 극한 대립, 정치적 리더십의 실패와 분열 등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선 매디슨 전 대통령의 신념이었던 '공화주의적 화합'이 극복할 수 있는 열쇠를 쥐어준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일단 만나서 합의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매디슨 전 대통령이 바랐던 정치의 올바른 모습일 수 있다.
매디슨 전 대통령 전기는 이상과 현실, 분열과 화합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록한 것이다. 그의 유연성은 한국의 정치인들이 지역주의와 이념 갈등을 넘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영감을 줄 만하다. 정파적 갈등을 극복하고 헌법적 자유를 지키는 데 매디슨 전 대통령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처럼 이 책은 민주주의 위기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한국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미국의 설계자 제임스 매디슨'은 단순한 전기를 넘어 매디슨 전 대통령의 사상이 미국과 세계에 끼친 영향을 탐구하는 역작이다. 존 미첨 퓰리처상 수상 작가는 이 책이 매디슨 전 대통령의 다채로운 삶을 흥미롭게 풀어내며 미국 이해에 필수적이라고 평했다. 애넷 고든-리드 퓰리처상 수상 작가는 펠드먼의 예리한 통찰력과 문장이 매디슨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고 칭찬했다. 월터 아이작슨은 매디슨 전 대통령의 이성적 사고와 공공심이 오늘날 정치적 혼란에 영감을 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