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대낮 강남서 발생한 절도 사건, 범인은 '57cm' 동물

2025-05-25 07:00

add remove print link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황당한 택배 도난 사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황당한 택배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의 정체는 바로 몸길이 약 57cm의 큰부리까마귀로 밝혀졌다. 최근 도심 곳곳에서 까마귀가 택배, 계란, 과자 등을 훔쳐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어 시민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 5월 초 서울 강남에서 까마귀의 절도 행각을 목격한 여성 / 유튜브 '스브스와이드'
지난 5월 초 서울 강남에서 까마귀의 절도 행각을 목격한 여성 / 유튜브 '스브스와이드'

5월 초 연휴기간, 서울 강남의 한 상가 앞에서는 배달된 택배가 까마귀에 의해 '공중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일 CCTV에는 큰부리까마귀 한 마리가 자연스럽게 택배 봉투를 입에 물고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택배 주인 A 씨는 "처음에 영상을 보고 웃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나'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 물품은 다행히 라벨 스티커로 고가 제품은 아니었지만, 유사한 사례가 전국적으로 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7일 대구의 한 편의점 앞에서는 까마귀가 과자 봉지를 뜯어 내용물만 먹어치우는 장면이 목격됐으며, 지난 3월 창원의 한 마트 앞에서는 달걀판을 노리는 까마귀 두 마리의 '협동 절도' 현장이 포착되기도 했다.

택배를 물고 날아간 까마귀 / 유튜브 '스브스와이드'
택배를 물고 날아간 까마귀 / 유튜브 '스브스와이드'

한국도시생태연구소 박병권 소장은 "큰부리까마귀를 비롯한 대부분의 조류는 특히 붉은색 물체나 음식 포장지에 강한 호기심을 보인다"며 "한번 물건을 집어 보상을 얻은 경험이 있으면 그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까마귀의 번식기(3~6월)로, 이 시기에는 에너지 소모가 커져 먹이 활동이 더욱 활발해진다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큰부리까마귀는 국내에서 가장 큰 까마귀류로 몸길이가 약 57cm에 달한다. 잡식성인 이들은 원래 산림이나 농촌 주변에 주로 서식했으나, 최근 도시의 녹지와 음식물 쓰레기 등 먹이 자원이 풍부해지면서 도심으로 서식지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조류 중에서도 지능이 높아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과 학습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수욕장에서 포착된 큰부리까마귀들 / 뉴스1
해수욕장에서 포착된 큰부리까마귀들 / 뉴스1

환경부는 큰부리까마귀로 인한 농작물 피해와 전력 공급 중단, 그리고 도심 내 피해 사례 등이 증가함에 따라 2023년 하반기부터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까마귀의 위험성은 물건 절도에 그치지 않는다. 번식기에는 사람을 향한 직접적인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6월 서울 용산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큰부리까마귀 공격 주의' 안내문이 게시되는 일이 벌어졌다. 단지 내 나무에 보금자리를 만든 까마귀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습격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관리사무소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서울 노원구에서도 비슷한 시기 보행자가 까마귀의 공격을 받아 머리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유튜브, 스브스와이드

국립생물자원관 국가철새연구센터의 최유성 연구사는 까마귀의 도심 정착 배경에 대해 "요즘은 아파트 단지마다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녹지 조성이 활발하고, 도시 지역에는 생활 쓰레기에서 나오는 먹이감이 풍부해 까마귀가 서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경쟁 관계에 있는 까치가 1994년부터 유해 조수 지정으로 개체 수 감소 정책이 시행되면서 상대적으로 까마귀 개체군이 확산된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 연구사에 따르면 1990년대 당시만 해도 시내에서 까마귀를 만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이는 까마귀의 도시 진출이 지난 30년 사이 급격히 이뤄진 변화임을 보여준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역설적으로 까마귀에게는 더 나은 서식 환경이 제공된 셈이다.

달걀을 노린 큰부리까마귀 / 유튜브 '스브스와이드'
달걀을 노린 큰부리까마귀 / 유튜브 '스브스와이드'

전문가들은 도심 속 '까마귀 절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야외에 물건을 오래 방치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까마귀의 번식기인 3~6월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도시 생태계의 일원이 된 까마귀와의 공존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이해와 적절한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home 윤희정 기자 hjyun@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