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뿔 달린 말이 없다고? 비 오면 드릴처럼 회전해 땅으로 들어가는 식물

2025-05-2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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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피해 지역에 큰 도움…과학계에도 영감 준 식물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움을 주는 식물이 있다. 단순히 보기 드문 생김새나 희귀한 분포지로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워낙 특이한 생태적 특징이 실제로 로봇을 만드는 데 영감을 줬을 정도다. 진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독특한 생태 전략과 생존 방식으로 과학자들과 자연 관찰자들을 매료시켜 온 이 식물에 대해 알아보자.

국화쥐손이 / Uunal-shutterstock.com
국화쥐손이 / Uunal-shutterstock.com

국화쥐손이(Erodium stephanianum)는 쥐손이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주로 북반구의 산악 건조 지대에서 자란다. 한반도에서는 함경북도와 황해북도 등 북부 깊은 산속에서 발견되며 전 세계적으로는 네팔, 몽골,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인도, 중국, 키르기스스탄, 파키스탄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척박한 환경에서 널리 분포한다. 높은 고도, 건조한 기후 등 생존이 쉽지 않은 지역에서 국화쥐손이는 오히려 번성하고 있다.

이 식물이 지닌 생태적 독창성은 형태와 번식 방식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국화쥐손이의 줄기는 전체에 흰색 털이 촘촘히 나 있으며 비스듬히 위로 자란다. 높이는 약 40~60cm까지 자라고 가지를 많이 치는 특성이 있다. 잎은 마주나고 2~3회에 걸쳐 깃 모양으로 깊게 갈라지며 선형의 갈래 조각이 4~7쌍씩 붙어 있다. 여름철인 7~8월에는 자주색 꽃이 피는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2~5개의 꽃자루 끝에 한 개씩 달린다. 꽃잎은 5개이며 도란형이고 길이 5~7mm로 자주색이다. 10개의 수술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절반인 5개만 꽃밥이 있다.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그러나 국화쥐손이의 진면목은 번식 전략에서 드러난다. 이 식물의 씨앗은 건조한 지역에 특화된 '자기 매몰' 기능을 갖고 있다. 씨앗 끝에는 코르크 병따개처럼 나선형으로 말린 꼬리가 달려 있는데 이 꼬리는 습기가 닿으면 풀리고 건조해지면 다시 말리며 회전 운동을 반복한다.

비가 오면 꼬리가 풀리며 씨앗이 마치 드릴처럼 땅속을 파고들고 다시 건조하면 반대로 감기며 조금 더 깊이 파고든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씨앗은 스스로를 땅속에 묻는 데 성공한다. 외부 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적절한 깊이를 찾아 파고드는 이 메커니즘은 국화쥐손이만의 독보적인 생존 전략이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이런데 뿔 달린 말이 없다고?", "조상님들의 지혜가 자연을 보고 터득한 거다. 자연 관찰은 중요한 것", "진화의 위대함...절대 누군가가 어떻게 알고서 한방에 만든 게 아니다", "너무너무 신기하다" 등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번식 방식은 단순히 신기한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극심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식물에 있어 안전한 발아는 생존의 핵심이다. 바람이나 동물에 의존하는 다른 식물들과 달리 국화쥐손이는 외부 방해 없이 자기 의지로 씨앗을 안전한 장소에 자리 잡게 한다.

이는 햇볕이나 포식자, 건조한 공기 등 외부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심지어 씨앗 크기의 1.5배 깊이까지 스스로 묻히는 이 능력은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진화 결과물이다.

국화쥐손이의 이 독특한 생태 전략은 기계공학계에도 큰 영감을 줬다. 이 식물의 자기 매몰 메커니즘을 모방한 ‘씨앗 로봇’이 개발됐고 이 기술은 산불 피해 지역의 항공파종이나 비료, 토양 균류 살포와 같은 정밀 파종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생물에서 기계로 이어지는 이 기술의 전이는 국화쥐손이가 단순한 식물 그 이상임을 보여준다.

Dark Egg-shutterstock.com
Dark Egg-shutterstock.com

국화쥐손이의 생존을 돕는 또 다른 요소는 꽃자루와 꽃받침이다. 꽃자루는 꽃이 진 후 뒤로 굽으며 씨앗이 지면 가까이 위치하도록 도와준다. 이 구조는 씨앗이 자기 매몰을 시작할 때 물리적 거리에서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또한 꽃받침은 장타원형이며 끝에 돌기가 있는 형태로 섬유질의 털이 촘촘하게 나 있어 꽃과 열매를 해충이나 강한 햇빛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꽃받침은 씨앗이 완전히 성숙할 때까지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해 주는 생물학적 보호막으로 작용한다.

국화쥐손이는 따뜻하고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란다. 이 식물의 잎과 줄기에는 털이 많아 수분 증발을 줄이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필요한 영양분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씨앗의 매몰 과정에 있어 토양이 부드럽고 습도가 적당해야 하므로 따뜻한 지역은 국화쥐손이의 생장과 번식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일반적인 식물들은 바람이나 동물, 물 등에 씨앗을 맡기며 생존을 도모한다. 민들레는 바람을 타고 도토리는 다람쥐가 저장하는 방식으로 번식하며 연꽃이나 코코넛은 물을 이용한다. 그러나 국화쥐손이는 외부 매개체 없이 오직 자신의 구조적 특성과 운동성만으로 번식을 이뤄낸다. 이는 식물계에서도 매우 드문 현상으로, 국화쥐손이가 얼마나 고도로 특화된 전략을 지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화쥐손이는 약용 식물로도 사용된다. 전초는 지사제로 활용되며 갈래손잎풀, 구와쥐손이, 쥐손이아재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국화쥐손이는 생태학적, 형태학적, 생리학적으로 놀라운 적응 능력을 갖춘 식물이다. 거칠고 생명체가 살기 힘든 환경 속에서도 번성하고 스스로를 지키며 후손을 남기는 이 작은 식물은 자연의 섬세한 설계와 생명의 집요한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유튜브, EBSDocumentary (EBS 다큐)
home 한소원 기자 qllk338r@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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