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길거리에 널리고 널렸는데…놀랍게도 '멸종위기' 처한 정말 뜻밖의 나무

2025-05-2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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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화석, 이 나무의 비밀

전국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어 거리를 장식하고, 낙엽이 떨어질 때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이 나무가 사실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복이 쌓인 은행나무 잎들. / 뉴스1
소복이 쌓인 은행나무 잎들. / 뉴스1

도심 속 가로수로 널리 쓰이는 '은행나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은행나무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가로수나 공원수로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은행나무를 '멸종위기' 식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은행나무 대부분이 인공적으로 식재된 것이며, 자연 상태에서 자라고 있는 진정한 야생 은행나무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은행나무의 야생 자생지는 중국 동부 저장성과 서남부 일부 지역에 국한돼 있으며, 이 지역에서만 아주 소수의 개체가 자연 번식 중이다. 우리가 거리에서 흔히 보는 은행나무들은 모두 인간에 의해 심겨진 것들이다. 한국에는 진정한 의미의 야생 은행나무 군락은 존재하지 않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들도 대부분 오래전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들이다.

은행나무길. 자료사진.  / 뉴스1
은행나무길. 자료사진. / 뉴스1

이 나무는 생물학적으로도 특별한 위치를 가진다. 약 2억 8천만 년 전부터 존재해온 은행나무는 은행나무문, 은행나무강, 은행나무목,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까지 전 계통에서 단 하나의 종만 남아 있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과거에는 다양한 은행나무종이 존재했지만 모두 사라지고 지금의 은행나무만이 살아남았다. 이런 계통 구조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드문 경우다. 결국 은행나무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그 유전적 다양성이나 진화적 독립성 면에서 절대적인 보존 가치가 있는 종이다.

문제는 이 나무가 스스로 살아남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은행나무는 종자가 크고 무겁다. 또 특유의 고약한 냄새와 독성 성분(아미그달린 등)으로 인해 동물들이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어린 나무가 종자를 맺기까지 30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성장도 느리다. 자연 상태에서의 번식이 극도로 어려운 구조다. 이런 이유로 은행나무는 '인간이 사라지면 가장 먼저 멸종할 식물 1위'로 꼽히기도 한다. 인간의 도움 없이는 번식도 생존도 불가능한 존재라는 뜻이다.

은행나무 열매들. / 뉴스1
은행나무 열매들. / 뉴스1

도심에서는 이 나무가 점점 미운털 박히고 있다. 특히 가을이면 은행 열매가 떨어져 악취와 보행 불편을 유발하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은행 열매는 씨앗의 바깥 육질층에 고약한 냄새를 담고 있는데, 이 열매가 땅에 떨어져 밟히면 강한 악취가 퍼진다. 겉씨식물인 은행나무는 열매가 아니라 씨앗을 맺지만, 사람들은 이를 전통 식재료로 활용해왔다. 한때 귀한 식재료로 여겨져 신선로, 약차, 술안주 등에 쓰였고 잎은 약재로도 활용됐다.

하지만 최근엔 민원이 잇따르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은 열매가 떨어지기 전에 털어내는 작업이다. 열매는 성숙 시기가 나무마다 달라 한 그루에서 2~3회에 걸쳐 수확 작업이 이뤄진다. 수확한 열매는 안전성 검사를 거친 후 경로당이나 사회복지시설 등에 기부된다. 올해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은행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 열매를 평년보다 빨리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에는 보행 불편 해소를 위해 암나무를 제거하고 수나무만 남기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로, 열매는 암나무에만 열리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묘목 단계에서 암수를 구분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DNA 분석 기술을 통해 선택적 식재가 가능해졌다.

은행나무잎 청소하는 모습. / 뉴스1
은행나무잎 청소하는 모습. / 뉴스1

은행나무는 병충해에 강하고 더위와 추위, 매연에도 견딜 수 있는 탁월한 내성을 지닌 나무다. 불에도 잘 타지 않고 공기 정화 기능도 뛰어나 도심 환경에 적합한 수종으로 손꼽힌다. 이런 이유로 오랜 세월 가로수로 채택돼왔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유용한 도시수종이 아닌, 국제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멸종위기종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눈앞에 익숙하다고 해서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은행나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도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식물로 분류돼 있다. 살아있는 화석, 멸종 위기종, 도심 속 불청객이라는 다면적 존재인 은행나무, 그 속에 담긴 생태적 가치와 역사성을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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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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