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 온몸 딱지로 뒤덮인 동물이…” 벌써 수개월째 인천 활보 중인 야생동물
2025-06-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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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으로 도심 출몰 사례 늘고 있는 야생동물
인천 송도 달빛공원 인근에서 개선충에 감염된 야생동물이 수개월째 출몰해 지역 주민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털이 대부분 빠지고 온몸이 딱지와 상처로 뒤덮여 한눈에 정체를 알아보기 힘든 이 야생동물의 정체는 바로 야생 너구리다.

최근 인천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 지역 야생 너구리 구조 사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2년 59건에서 시작해 2023년 64건, 지난해에는 85건으로 늘어났다. 도심 지역 출몰 사례가 늘면서 관련 민원도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가 된 너구리는 지난 4월부터 송도 달빛공원과 센트럴파크 주변 지역에 빈번하게 출몰하고 있다. 첫 제보 이후 현재까지 포획 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상태다. 야생동물의 특성상 설치된 포획 장치를 회피하는 행동을 보여 구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 너구리를 목격한 주민 김 모(42) 씨는 지난 4일 기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녁에 산책을 하는데 온몸이 딱지로 뒤덮인 동물이 나타나 깜짝 놀랐다. 찾아보니 개선충에 걸린 너구리였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병에 걸리고 오랫동안 포획되지 않아 상태가 많이 심각해 보인다"며 "걱정스럽기도 하고 혹시 반려견에게 옮진 않을까 너무 걱정된다"고 불안감을 토로했다.
인천시 연수구 관계자는 매체에 "주민들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으며, 현재도 (야생 너구리) 출몰 지역에 포획틀을 설치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심 너구리 출몰, 전국적 증가세..."접촉 절대 금물"
도심 너구리 출몰 사례는 인천뿐 아니라 전국에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18년 49마리였던 구조 건수가 지난해에는 117마리까지 늘어났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서울 25개 자치구 중 서대문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너구리 구조가 이뤄졌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이 지난달 2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25개 자치구 중 24개 지역에서 너구리가 관찰됐으며, 서울 전체 면적의 약 32.2%에서 너구리가 서식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야생동물구조센터 구조 포유류 중 너구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41.7%로, 구조되는 포유동물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같은 도심 너구리 증가 현상의 주요 원인은 개발로 인한 산림과 구릉 등 기존 서식지 감소와 함께 도심 내 생태공원, 하천, 산책로 등이 새로운 서식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한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제공되는 사료가 너구리들의 주요 먹이원이 되고 있다. 서울연구원의 조사에서도 고양이 급식소 주변이 너구리 서식 밀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개과 동물인 너구리의 주요 천적인 늑대나 담비 등이 도심에서 사라지면서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고, 너구리의 뛰어난 환경 적응력과 잡식성도 도심 적응을 돕고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야생 너구리를 통해 사람이나 반려견 등에 질병이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 연구진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초까지 야생 너구리 28마리를 조사한 결과, 5마리에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병원체가, 1마리에서 렙토스피라 병원체가 검출됐다. SFTS는 진드기 매개 질병으로 고열과 혈소판 감소 등 심각한 증상을 일으키며, 국내 치사율이 약 32%에 달하는 위험한 질병이다.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SFTS로 인한 사망자는 381명에 달한다.
또한 폐사한 너구리에서는 인수 공통 감염병인 렙토스피라 병원체도 확인됐다. 렙토스피라는 감염 동물의 소변으로 전파되는 세균성 질병으로, 상처나 점막을 통해 인체 감염이 가능하다. 발열과 두통, 심한 근육통을 동반하며 중증의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구조된 야생 너구리의 약 54.8%가 개선충에 감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개선충은 드물게 사람에게도 옮겨올 수 있으며, 감염 시 4~6주 잠복기 후 전신 가려움, 붉은 반점, 습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너구리는 광견병 바이러스의 대표적인 매개 동물이기도 하다. 서울시 등 지자체에서는 매년 봄·가을 너구리를 대상으로 광견병 미끼 백신을 살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야생 너구리에서는 개허피스바이러스, 개코로나바이러스 등 반려동물 관련 병원체들이 다수 검출돼 애완동물 보호자들의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야생 너구리를 직접 접촉하지 않는다면 감염 위험은 높지 않다고 설명한다. 다만 감염 예방을 위해 야생동물 출몰이 우려되는 지역에서는 반려동물 산책 시 목줄을 착용하고, 기생충 감염과 광견병 등의 예방을 위해 정기적인 외부·내부 구충, 예방접종을 하라고 권장한다.
전문가들은 야생 너구리 발견 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거나 소리·빛으로 자극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먹이를 주거나 만지는 행위는 절대 삼가야 한다고 경고했다.
또 반려동물과 산책 중 너구리를 만나면 즉시 반려동물을 안고 자리를 피해야 한다. 만약 너구리에게 물리거나 긁혔다면 즉시 상처 부위를 비눗물로 씻고 병원에 방문해야 하며, 접촉한 반려동물도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