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도 포착됐는데…제주 바다서 사체 발견된 '최대 230kg' 멸종위기종
2025-06-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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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암 7년 투병하다 제주 중문 앞바다서 사체로 발견
제주 연안에 120여 마리 서식 중인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구강암을 앓으며 주둥이를 다물지 못한 채로도 7년을 버텨온 제주 남방큰돌고래 '턱이'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턱이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지난 2일 제주 서귀포시 중문 앞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되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제주대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 김병엽 교수와 다큐제주 오승목 감독은 5일 남방큰돌고래 '턱이'의 사체가 중문 주상절리 인근 해상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턱이는 죽기 전날인 1일에도 서귀포 대정읍 무릉리 앞바다에서 비교적 활발히 유영하는 모습이 포착돼,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충격이 더욱 크다.
턱이는 2019년 처음 발견됐을 당시 주둥이가 틀어져 혀가 밖으로 돌출된 독특한 형태를 보였다. 구강암으로 인한 기형으로 추정된 이 개체는 이후 '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관찰 대상이 됐다. 턱이는 건강한 먹이사냥이 어려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서귀포 서남부 일대 양어장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넙치를 주 먹이로 삼으며 7년간 생존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오 감독은 연합뉴스 등에 "7년 전 발견 당시에도 구강암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상당 기간 투병한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턱이의 강인한 모습은 지켜보는 연구자나 시민들에게는 장애를 극복하는 희망의 상징이었다"고 말했다.

사체 발견 소식은 단순한 한 마리의 죽음을 넘어 제주 해양 생태계와 멸종위기종 보호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KBS에 따르면 턱이는 제주 해안에서 폐어구에 걸린 새끼 돌고래가 발견됐던 과거 사례를 계기로,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제주 연안을 돌며 추적하던 중 발견한 개체였다. 당시 낚싯줄과 바늘에 걸려 고통받는 새끼를 지켜보던 어미 돌고래의 모습은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턱이의 존재는 더욱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경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김 교수와 오 감독은 2시간 넘는 작업 끝에 턱이의 사체를 육상으로 옮겼다. 오 감독은 "턱이가 죽기 하루 전 촬영한 영상이 살아있는 마지막 모습이 돼버렸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아름다운 곳에서 편히 쉬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이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남방큰돌고래는 2000년대에 이르러 큰돌고래와 유전적으로 구별되는 독립된 종으로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연안지역에 정주하는 특성이 강한 이들은 해양 생태계의 피라미드 최상위에 위치한 대표적인 포식자이며, 이들의 개체 수와 건강 상태는 연안 생태계의 건강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생물학적 지표로 활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연안에 평생을 정주하는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서식하고 있으며, 이들 개체군은 국제적으로도 보호 가치가 높은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보통 수명 약 40년을 살며, 약 12개월의 임신 기간을 거쳐 한 마리의 새끼를 출산한다. 다 자란 개체의 몸길이는 약 2.6m, 무게는 최대 230kg에 달한다. 등 쪽은 짙은 회색, 배 쪽은 밝은 회색 또는 거의 흰색에 가까운 색을 띠며, 그 생김새는 지극히 친근하고 아름다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턱이의 죽음은 제주 남방큰돌고래 보호 활동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현재 제주 연안에는 약 120여 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서식 중이며, 이들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 있다. 제주도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생태법인 지정 추진에 나섰다.
지난 2월 제주해녀박물관에서는 '제주 남방큰돌고래 생태법인 서포터즈 발대식'이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117명의 시민 서포터즈와 현장에서 추가로 모집된 30여 명은 해양 정화활동, 플라스틱 저감 운동, 생태관광 캠페인 등을 통해 남방큰돌고래 보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법인 제도는 자연물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인간 중심의 보호를 넘어 자연 그 자체의 권리를 인정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제주도는 이를 대한민국 최초의 사례로 만들기 위해 관련 제주특별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바다에서 해녀들과 교감하며 살아온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라며, "제주도정은 서포터즈와 함께 대한민국 제1호 생태법인 지정을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연구센터와 다큐제주 측은 턱이의 사체를 부검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 연구자료로서의 활용도 검토 중이다. "안타깝지만 턱이는 세상을 떠났고 사체 부검을 통해 질병 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라며, "안전한 제주 바다를 꿈꾸는 남방큰돌고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때"라고 밝혔다.
아름다운 제주 바다에서 장애를 안고도 꿋꿋이 7년을 살아낸 돌고래, 턱이. 긴 시간 고통과 투병을 견뎌내며 바다 위를 유영한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결코 작지 않았다. 턱이는 단순한 개체를 넘어, 생명력과 희망, 공존의 상징으로 남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따뜻한 물결처럼 살아 숨 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