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고 먹는다” 정력에 좋다며 몰래 먹었다는 ‘대반전 채소’ 정체
2025-06-0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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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초’라는 속칭으로 불리던 이 채소
한국인 밥상 위에서 빠질 수 없는 국민 채소
상추는 우리 식탁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채소 중 하나다. 삼겹살을 먹을 때, 회를 먹을 때, 국밥에 곁들일 때도 빠지지 않는 쌈 채소.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먹는 이 친숙한 채소가 한때는 몰래 먹어야 할 정도로 귀하고, 또 남몰래 정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은 다소 의외다.

"가을상추는 문 닫고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보통은 가을에 수확한 상추가 가장 맛있다는 의미로 이해되지만, 속뜻은 조금 다르다. 오래된 문헌과 민속 속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 말은 상추가 정력에 좋다는 민간 속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상추를 많이 먹으면 성욕이 강해진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고, 그래서 남몰래 키우고 먹는 식재료로 여겨지기도 했다.
상추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에도 상추가 등장하며, 이들은 상추를 생식과 풍요를 관장하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삼았다. 기원전 6세기에는 페르시아 왕의 식탁에도 올랐고,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주요 채소로 재배되었다. 동양에서는 당나라 의학서인 『천금식치』에 상추가 정력을 더해주는 식재료로 소개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동의보감』에는 오장을 편하게 하고 기력을 돕는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로 조선 시대에는 상추를 고추밭 이랑 사이에 몰래 심었다는 전승도 있다. ‘은근초’라는 속칭으로 불리던 상추는 ‘상추를 많이 심는 집 마님의 은밀한 의도’를 암시한다는 설화까지 전해진다. 상추 한 포기를 앞에 두고도 그 의미는 단순한 쌈 채소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현대 영양학에 따르면, 상추는 비타민 A, B1, 칼슘, 철분이 풍부한 건강 채소다. 피로 회복, 수면 유도, 신경 안정 등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연구 결과는 있지만, 정력 강화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상추가 졸음을 유발한다는 인식이 더 강하다. 상추에는 락투카리움(lactucarium)이라는 성분이 함유돼 있는데, 이는 진정 작용과 수면 유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상추를 먹고 나면 나른해지고 졸리다는 일반적인 경험과도 부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상추가 ‘정력에 좋다’고 믿어졌던 문화적 맥락은 흥미롭다. 어쩌면 그것은 상추를 귀한 채소로 여겼던 시대의 심리적 투영일지도 모른다. 쉽게 얻을 수 없고,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식재료이기에 자연스레 ‘힘을 북돋워주는 음식’이라는 상징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상추는 이제 누구나 쉽게 먹는 채소다. 삼겹살에 싸 먹고, 쌈장 한 숟갈 얹어 쌈을 만들며 특별함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상추가 지닌 문화적 상징과 민간 속설들을 떠올려본다면, 지금 눈앞에 놓인 쌈 한 장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정력에 좋은 채소’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상추는 분명, 한때는 문을 닫고 몰래 먹을 만큼 특별했던 채소였고, 수천 년에 걸쳐 동서양 모두의 식탁에 올라왔던 식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상추는 그저 흔한 채소가 아닌, 보통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지닌 ‘대반전 채소’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기만 털어 무치면 끝…입맛 확 살리는 제철 반찬 ‘상추 겉절이’
요즘 같은 제철엔 밥상 위에서 빠질 수 없는 반찬이 있다. 바로 입맛 돋우는 제철 채소, 상추를 활용한 겉절이다. 평소 고기쌈이나 쌈밥으로 자주 쓰이는 상추지만, 제대로 무쳐낸 겉절이 하나면 밥 한 공기쯤은 금세 사라진다.
상추 겉절이의 매력은 그 신선함과 간편함에 있다. 별다른 재료 없이도 상추 본연의 향긋한 풋내와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면서, 감칠맛 도는 양념이 더해지면 완성도 높은 집 반찬이 된다. 상추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물기를 가볍게 턴 뒤 먹기 좋게 손으로 찢는 것이 좋다. 칼로 썰기보단 손으로 뜯는 방식이 상추의 결을 살리면서도 양념이 더욱 자연스럽게 배이게 한다.
양념장은 간단하지만 핵심이다. 간장 2큰술, 고춧가루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설탕 1작은술, 식초 1큰술, 참기름 1큰술, 통깨 약간을 넣고 고루 섞어준다. 여기서 식초는 입맛을 돋우는 신맛을 더하고, 참기름과 통깨는 고소한 마무리를 책임진다. 준비한 양념장을 상추 위에 붓고 손으로 조물조물 무치면 끝. 이때 상추를 세게 주물러 상처가 나지 않도록 가볍게 버무리는 것이 신선한 겉절이를 유지하는 팁이다.
겉절이는 즉석에서 무쳐 바로 먹는 반찬이기 때문에 신선도가 생명이다. 무친 뒤 시간이 지나면 상추가 숨이 죽어 아삭한 식감이 사라지므로, 되도록 먹기 직전에 무쳐내는 것이 좋다. 입맛이 없을 때, 혹은 고기 없이도 밥맛을 살리고 싶을 때 상추 겉절이는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여름철 입맛 없을 때 제격인 상추 겉절이는, 흔한 재료로도 충분히 식탁에 풍미를 더하는 한 접시의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