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끓여낸 1500년의 맛...태안 자염, 식탁 위 ‘검은 황금’으로 부활하다
2025-06-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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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전통 제염법, 20년 노력 끝에 복원… 미슐랭 셰프도 찾는 명품 소금으로
칼슘 풍부하고 쓴맛 없어… 슬로푸드 ‘맛의 방주’ 등재로 가치 인정

2001년 충남 태안에서 극적으로 복원된 우리나라 전통 소금 ‘자염(煮鹽)’이 20여 년 만에 그 독보적인 맛과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식탁 위의 명품’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생산 과정이 고되고 까다로워 소량만 얻을 수 있지만, 그 깊은 풍미 덕에 미슐랭 스타 셰프를 비롯한 정상급 요리사들이 먼저 찾는 귀한 식재료로 자리매김했다.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의 한 영농법인에서는 매년 20~30톤의 자염을 생산한다. 갯벌 흙에 바닷물을 여러 번 걸러 염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뒤, 가마솥에서 10시간 넘게 은근한 불로 끓여내는 전통 방식 그대로다. 이 과정에서 쓴맛과 떫은맛을 내는 불순물은 거품으로 걷어내고, 칼슘과 유리아미노산 등 이로운 미네랄만 남아 구수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자염의 진가는 특히 김치에서 드러난다. 일반 소금에 비해 유산균 수를 월등히 늘려 김치의 깊은 발효를 돕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고의 김장 재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또한 입자가 곱고 염도가 낮아 어떤 요리에 사용해도 재료 본연의 맛을 부드럽게 살려낸다.
본래 삼국시대 이전부터 서해안의 소금 생산을 책임졌던 자염은 우리 음식 맛의 근간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대량생산이 가능한 천일염에 밀려 1960년대에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전통 음식의 원형을 복원하려면 자염이 필수’라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참고할 사료조차 거의 없어 복원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린 것은 2001년 태안문화원이었다. 당시 정낙추 이사를 중심으로 지역 어르신들의 어린 시절 기억에 의지해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전통 방식을 재현해냈다. 소를 이용해 갯벌을 써는 ‘통자락 방식’을 복원한 순간, 국내 소금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후 정 이사는 영농조합을 설립해 20여 년간 자염 생산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생산지인 ‘낭금 갯벌’은 한 번 물이 빠지면 7~8일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제방 없이 자연 갯벌 그대로 소금을 만들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장소다. 한국전쟁 이후 대부분의 갯벌이 농지로 바뀌는 와중에, 1960년대 간척 사업이 제방 유실로 실패하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전화위복’의 땅인 셈이다.
고난의 역사를 딛고 일어선 태안 자염은 2013년 슬로푸드 국제대회에서 소멸 위기 토종 종자를 보존하는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한국 식재료 중 8번째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군 관계자는 “자염은 태안의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게장, 게국지 등 지역의 염장 음식 문화와 연계해 자염을 태안의 핵심 관광 콘텐츠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