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호 vs 극혐... 호불호가 심해도 너무 심하게 갈리는 '한국 여름 음식'
2025-06-1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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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이 좀 둔하네?” vs “미식가인 척하기는”

더운 여름철에 냉면은 한국인들의 영혼과도 같은 음식이다. 그중에서도 평양냉면은 독특한 맛과 전통으로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문제는 평양냉면 맛을 둘러싼 논쟁이 해마다 뜨겁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이들을 향해 ‘미식가인 척한다’는 비판이 쏟아지는가 하면 반대로 평양냉면을 비판하는 이들을 ‘미각이 둔하다’며 깎아내리는 경우도 있다. 평양냉면의 매력은 무엇이고 왜 이토록 사람들의 입맛을 갈라놓는 걸까.
평양냉면은 한국 전통 음식 중 하나다. 이북 지역, 특히 평양에서 기원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메밀면을 사용한다. 차갑고 맑은 육수에 고기, 오이, 배, 삶은 달걀 등의 고명을 얹어 낸다. 육수는 소고기나 꿩, 닭 등을 오랜 시간 우려내 만든다. 동치미 국물을 더해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 전통적으로 평양냉면은 간이 강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슴슴한’ 맛이 특징이다. 이 점이 다른 지역의 냉면, 예를 들어 함흥냉면의 매콤하고 강렬한 양념과 대비된다. 메밀면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육수는 맑고 담백해 여름철 더위를 식히기에 제격이다. 하지만 이 담백함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최근 ‘류맛탱’이란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화제가 됐다. 영상에서 유튜버는 평양냉면 육수를 맹물에 고기를 휘저은 듯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이 유튜버는 평양냉면이 맛있다는 말을 가스라이팅에 비유하며 “연예인들이 미식가인 척하며 맛을 과장했다”고 주장했다.
평양냉면 맛을 둘러싼 논쟁의 한쪽에는 평양냉면의 담백한 맛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평양냉면의 깔끔한 육수와 메밀면의 조화가 독특한 매력이라고 말한다. 한 네티즌은 여러 번 먹다 보면 처음엔 낯설던 맛에 점차 중독된다고 했다.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평양냉면을 먹는 건 순수한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평양냉면은 고급 원재료를 사용해 오랜 시간 공들여 육수를 만든다면서 미각이 예민한 사람만이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이들은 함흥냉면처럼 ‘단짠’이 강한 음식과 견줘 평양냉면이 보다 세련되고 깊은 맛을 낸다고 평가한다. 한 네티즌은 평양냉면을 몇 번 먹다 보면 비빔냉면보다 강렬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도 했다.
반면 평양냉면의 맛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육수가 너무 밍밍한 까닭에 ‘맹물에 면을 말아놓은 듯하다’고 비판한다. 한 네티즌은 유명한 평양냉면집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여전히 그 맛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값에 비해 만족도가 낮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이는 평양냉면을 먹으며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 속 군중처럼 모두가 맛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맛이 없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특히 가격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한 네티즌은 5500원짜리인 밀면과 비교해 평양냉면은 왜 이렇게 비싼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평양냉면의 기원을 둘러싼 이야기도 논쟁에 불을 지핀다. 전통적으로 평양냉면은 꿩 육수와 동치미로 맛을 낸 고급 요리였다고 전해진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조부가 평양에서 즐기던 냉면은 꿩고기로 만든 달달한 육수에 메밀면을 곁들인 럭셔리한 음식이었다고 회고했다. 겨울철 상류층이 매사냥 후 뜨끈한 방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풍류의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현대의 평양냉면은 이런 오리지널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견도 있다. 한 네티즌은 북한의 유명한 옥류관에서조차 식초와 겨자를 듬뿍 넣어 먹는다고 전하며, 한국의 밍밍한 평양냉면은 진짜 평양냉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탈북민 출신의 한 네티즌은 한국의 평양냉면을 먹어보고 실망해 직접 가게를 열었지만 손님들이 이를 평양냉면으로 인정하지 않아 결국 폐업했다고 밝혔다.
일삭에선 평양냉면을 둘러싼 공방 자체가 불필요하다며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스라이팅 피해자로 몰아가는 것도, 반대로 그들을 미식가인 척한다고 비꼬는 것도 모두 같은 수준의 편견이라는 것이다.
평양냉면 논쟁은 단순한 음식 취향을 넘어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담고 있다. 이북 지역 음식이 오늘날 한국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으며 사랑과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깊고 세련된 맛으로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싼 가격에 비해 실망스러운 ‘맹물 국수’일 뿐이다. 아마도 여름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냉면 그릇이 식탁에 오르는 한 이 논쟁은 계속될 듯하다. 각자의 미각이 만들어내는 이 다채로운 공방이 평양냉면 한 그릇에 담긴 진정한 매력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