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 하면 떠오르는 흔한 반찬인데…조선시대엔 귀한 취급받았다는 뜻밖의 '나물'

2025-06-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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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의 싹을 내어 먹는 나물

백반집에서 흔히 나오는 반찬 중 하나인 '숙주나물'. 시원하게 데친 뒤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 무쳐낸 이 단출한 나물은 지금은 대개 별다른 의미 없이 상에 오르지만, 조선시대에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가진 귀한 음식이었다. 오늘날에는 손쉽게 대량 생산되는 식재료지만,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숙주나물은 아무나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나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AI가 생성한 자료사진.

조선시대의 숙주나물은 어른 생신 날 아침상에 오르거나, 돌잔치 점심상, 손님 접대용 국수 위에 얹는 등 특별한 자리에만 쓰이던 고급 식재료였다. 이는 녹두의 싹을 틔워 만든 숙주나물이 직접 키워야 했고,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는 특성상 대량 유통이 불가능했던 시대의 조건과 맞물려 있다. 맛도 쉽게 변하는 까다로운 성질을 가진 탓에 귀하게 다뤄졌고, 일상적 반찬으로 쓰이기보다는 특별한 날을 장식하는 음식이었다.

숙주나물의 유래는 더 흥미롭다. 조선 세조 시기, 단종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세조에게 협조한 신숙주는 당시 충신 여섯 명을 고변해 죽게 만든 인물로, 백성들 사이에서는 배신자로 각인돼 있었다. 그 신숙주의 이름을 따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숙주나물을 만두소로 쓸 때 짓이기듯 다지는 방식에 빗대어, 백성들이 신숙주를 향한 분노와 비판을 담아 나물 이름에까지 투영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숙(宿)'과 '주(主)'의 한자 결합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이는 녹두를 물에 일정 기간 담가 숙성시킨다는 의미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으로, 보다 언어학적인 해석이다.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숙주나물이 단순한 나물 이름을 넘어 조선시대의 역사와 정서가 깃든 상징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숙주나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나라 문헌 '거가필용'에 따르면 녹두를 물에 담가 싹을 틔운 뒤 껍질을 벗기고 데쳐 생강, 소금, 식초, 기름 등으로 무쳐 먹는 '두아채'라는 나물이 존재했는데, 이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숙주나물과 거의 같은 조리법이다. 당시 고려가 원나라와 활발히 교류했던 점을 고려하면, 숙주나물은 이 시기에 중국에서 들어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숙주나물. 자료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숙주나물. 자료사진. / 한국학중앙연구원

숙주나물은 콩나물에 비해 열량은 낮지만, 비타민 A가 훨씬 풍부하다. 녹두의 싹을 틔워 만드는 이 나물은 비타민 C, 식이섬유도 풍부하며 소화에 좋고 몸에 열을 내려주는 성질이 있어 여름철 반찬으로도 제격이다. 하지만 조리 시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데치는 시간이 길면 식감이 물러지고 영양소도 손실되기 쉽기 때문에 살짝 데친 후 물기를 꼭 짜서 양념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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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권미정 기자 undecided@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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