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사람 몸에 '독'으로 작용하는 줄 알았는데... 대반전 식재료
2025-06-26 11:09
add remove print link
심장병과 당뇨병 예방에 도움 준다는 새로운 증거 발견
수십 년간 건강 논쟁의 중심에 섰던 ‘씨앗 기름’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콩기름, 옥수수기름, 해바라기유 등 식물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들이 심장병과 제2형 당뇨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혁신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염증 유발 물질'이나 '독성 기름'으로 여겨져 온 씨앗 기름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바꾸는 연구 결과다.
인디애나대학교 보건대학 연구팀이 혈중 리놀레산 수치가 높을수록 심혈관 질환과 당뇨병 발병 위험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최근 미국영양학회의 연례 학술대회인 ‘뉴트리션(NUTRITION) 2025’에 발표했다.
리놀레산은 인체가 스스로 생성할 수 없는 필수 지방산 중 하나로, 오메가-6 지방산계열에 속한다. 이 성분은 해바라기유, 콩기름, 옥수수기름, 카놀라유, 참기름, 홍화유 등 다양한 식물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에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리놀레산의 화학명은 C18:2 n-6이며, 18개의 탄소 원자와 2개의 이중 결합을 가진 불포화 지방산이다.
리놀레산의 주요 생리적 기능은 매우 다양하다. 세포막의 구조적 구성 요소로서 세포막의 유동성과 투과성을 조절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프로스타글란딘과 류코트리엔 같은 생리활성 물질의 전구체가 되기도 한다. 특히 리놀레산은 아라키돈산으로 전환돼 다양한 염증 매개체를 생성하는데, 이 과정이 적절히 조절될 때는 오히려 항염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혈관 건강 측면에서 리놀레산은 LDL(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HDL(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포화지방을 리놀레산으로 대체했을 때 총 콜레스테롤과 LDL 콜레스테롤이 감소했으며, 인슐린 민감성과 혈압 개선에도 도움이 됐다.
인디애나대학교 보건대학의 케빈 C. 마키 부교수가 이끈 연구는 기존 연구들과 차별화되는 중요한 특징을 갖고 있다. 연구진은 1894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혈장 내 리놀레산 수치와 심혈관 질환의 연관성을 장기간 추적 관찰했다. 마키 교수는 "최근 씨앗 기름이 염증을 일으키고 심장대사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우리 연구는 이를 반박한다"고 명확히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혈중 리놀레산 수치가 높은 참가자들은 심혈관 대사 위험과 관련된 염증 바이오마커 수치가 현저히 낮았다.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리놀레산 수치가 높은 그룹에서는 심혈관 질환 위험은 물론 제2형 당뇨병 위험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병 예방 효과와 관련해서는 더욱 구체적인 생리학적 메커니즘이 확인됐다. 리놀레산 수치가 높은 참가자들은 공복 시 포도당 수치와 인슐린 수치가 모두 낮았으며, 특히 인슐린 저항성의 핵심 지표인 HOMA-IR(Homeostatic Model Assessment for Insulin Resistance) 수치가 현저히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HOMA-IR은 공복 시 혈당과 인슐린 수치를 이용해 계산하는 지표다. 수치가 낮을수록 인슐린 감수성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연구의 신뢰도는 무엇보다 연구 방법론의 객관성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의 많은 영양학 연구들이 참가자들의 주관적인 식사 기록이나 설문 조사에 의존한 데 반해 이번 연구는 참가자들의 혈액 검사를 통해 리놀레산 수치를 직접 측정했다. 마키 교수는 "객관적인 바이오마커를 사용해 리놀레산 섭취량과 건강 지표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고 연구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연구팀은 단순히 리놀레산 수치만을 측정한 것이 아니라 혈당 대사 지표와 다양한 염증 관련 바이오마커를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분석 대상에는 C-반응성 단백질(CRP), 인터루킨-6(IL-6), 종양괴사인자-알파(TNF-α) 등 주요 염증 지표들이 포함됐다. 그 결과 리놀레산 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이러한 염증 지표들이 낮게 나타났으며, 전반적인 심장병과 당뇨병 위험 지표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존의 대규모 전향적 연구들과도 일치하는 양상을 보였다. 대규모 데이터셋을 활용한 연구에서도 혈중 리놀레산 수치가 높을수록 관상동맥 질환, 뇌졸중, 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공인 영양치료사인 캐리 비슨은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해 "씨앗 기름은 포화지방 함량이 낮아 객관적으로 꽤 건강한 지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논평했다. 실제로 씨앗 기름들은 포화지방 함량이 10~15% 수준으로 낮은 편이며, 불포화지방 비율이 높아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놀레산의 건강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메가-6 지방산의 대사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놀레산은 체내에서 감마-리놀렌산(GLA)을 거쳐 아라키돈산으로 전환된다. 아라키돈산은 다시 다양한 염증 매개체들의 전구체가 되는데, 이 과정에서 프로스타글란딘 E2, 류코트리엔 등이 생성된다. 과거에는 이들 물질이 주로 염증을 촉진한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연구들은 적절한 농도에서는 오히려 염증 조절과 해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리놀레산은 피부 건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부 장벽 기능을 유지하는 세라마이드 합성에 필요한 원료가 되며, 리놀레산이 부족할 경우 피부 건조, 습진, 아토피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리놀레산이 단순히 에너지원이 아니라 인체의 정상적인 생리 기능에 필수적인 영양소임을 보여준다.
심혈관 건강 측면에서 리놀레산의 효과는 여러 메커니즘을 통해 나타난다. 첫째, 혈관 내피 세포의 기능을 개선해 혈관의 탄력성을 높인다. 둘째, 혈소판 응집을 적절히 조절해 혈전 형성을 방지한다. 셋째, 혈관 평활근 세포의 증식을 억제해 동맥경화 진행을 늦춘다. 넷째, 혈압 조절에 관여하는 프로스타사이클린 생성을 촉진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균형 잡힌 지방 섭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씨앗 기름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무제한 섭취하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서구식 식단에서는 가공식품, 드레싱, 마요네즈, 배달음식 등을 통해 이미 상당량의 씨앗 기름을 섭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슨은 "코코넛 오일이나 올리브유 등을 함께 사용하고, 등푸른 생선과 아마씨, 치아시드, 호두 등으로부터 오메가-3 지방산을 충분히 섭취하라"고 조언했다. 오메가-6 지방산인 리놀레산과 오메가-3 지방산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상적인 오메가-6 대 오메가-3 비율은 4:1에서 2:1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메타분석 연구들도 이러한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전향적 코호트 연구들을 종합 분석한 결과, 식이 리놀레산 섭취량과 관상동맥 질환 위험 사이에는 용량-반응 관계가 있는 역상관관계가 확인됐다. 즉, 리놀레산 섭취량이 증가할수록 심장병 위험이 단계적으로 감소한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또한 개인차를 고려한 영양학적 접근의 중요성도 시사한다. 유전적 요인, 장내 미생물, 전반적인 식생활 패턴 등에 따라 리놀레산의 대사와 효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FADS(Fatty Acid Desaturase) 유전자 변이에 따라 리놀레산을 아라키돈산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씨앗 기름을 선택할 때는 가공 방법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화학적 추출 과정을 거친 정제유보다는 압착 방식으로 추출한 기름이 더 많은 영양소를 보존하고 있다. 또한 보관 방법도 중요하다. 불포화지방이 많은 씨앗 기름은 빛과 열, 공기에 노출되면 산화돼 오히려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요리 방법에 따른 선택도 고려해야 한다. 높은 온도에서 조리할 때는 발연점이 높은 정제 씨앗 기름을, 샐러드 드레싱이나 저온 조리에는 압착 방식의 기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콩기름과 옥수수기름은 발연점이 비교적 높아 볶음요리에 적합하고, 참기름은 풍미가 강해 마무리 향신료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영양학계는 이번 연구 결과를 통해 오메가-6 지방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받았다. 그동안 오메가-3 지방산만이 항염 작용을 한다고 여겨졌지만, 오메가-6 지방산도 적절한 양에서는 염증 조절과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