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 러브버그“… 이렇게 느리고 만만한 녀석을 새는 왜 안 먹을까

2025-06-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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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히지 않는 이유가 있다…은근히 똑똑한 저 벌레

이하 서울 도심에 출몰한 러브버그의 모습. / 뉴스1
이하 서울 도심에 출몰한 러브버그의 모습. / 뉴스1

매년 이맘때 수도권에서 방충망과 자동차에 덕지덕지 달라붙고, 가끔 팔과 다리에도 붙는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는 귀여운 이름과 달리 짜증 유발 벌레로 악명이 높다. 그런데 초여름 불청객인 러브버그 떼를 보면서 생기는 궁금증이 하나 있다. 이렇게나 푸짐하고, 짝짓기하느라 정신없는 만만한 녀석을 새가 잡아먹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사실.

생태계에 사실상 천적이 없는 탓에 인간이 화학적·물리적으로 제거하든, 창궐 2주 정도 후 자연 소멸하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성가신 녀석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곤충학자들은 러브버그가 동물 먹잇감으로 기피되는 이유가 한마디로 '맛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먹으면 기분 나쁜 벌레'로 통한다고 한다.

미국 플로리다대 곤충학과에서 낸 보고서에 따르면, 러브버그는 새, 거미, 잠자리 같은 포식자들로부터도 거의 공격받지 않는다. 일부 포식자가 시도하긴 하지만, 맛이 너무 별로여서 학습 효과로 '다시는 안 먹는' 종류가 된다는 것.

러브버그를 연구한 미국 EDIS(플로리다 농업·소비자 서비스국)는 "러브버그 체액이 산성이라 입에 넣는 순간 불쾌한 자극을 준다"며 이 성분이 생존을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단 러브버그는 겉모습부터 서늘하다. 까만 몸통과 붉은 가슴은 왠지 위험해 보인다.

이건 포식자들에게 "나 먹으면 큰일 나!"라고 알리는 ‘경고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자연계에서 빨간색과 검은색 조합은 독이 있는 생물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러브버그가 실제로 독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맛없고 위험할 수도 있다”는 착각만 심어줘도 성공이다.

반전이 있다면, 애벌레 시절에는 러브버그가 인기가 많다는 점이다. 땅속에서 썩은 낙엽이나 퇴비를 먹으며 사는 애벌레들은 지네, 개미, 딱정벌레, 귀뚜라미 등에게 꽤 맛있는 간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성체가 되면서는 완전히 딴판으로 변신한다. 심지어 스스로 먹지도 않고, 오직 짝짓기와 산란만 하다가 며칠 만에 생을 마감한다. 생존보다 번식에 올인하는 인생이라서 영양도 없고, 먹을 만한 부분도 적어 결국 아무도 안 먹는 벌레로 진화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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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이렇게 맛도 없고, 짜증만 유발하는 이 벌레는 왜 존재하는 걸까.

러브버그는 생태계에서 ‘청소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애벌레 시절 썩은 식물이나 낙엽을 분해해 흙을 비옥하게 만드는 일을 한다. 그리고 번식 후에는 인간의 간섭 없이도 자연스럽게 수명이 끝난다. 떼로 나타나 혐오감이나 생활 불편을 주지만, 사람을 물거나 질병을 옮기지 않는 등 익충으로 분류된다.

러브버그는 보기엔 징그럽지만 알고 보면 먹히지 않는 이유도, 생태계에 꼭 있어야 하는 이유도 있는 꽤 똑똑한(?) 벌레다. 다음에 차 유리에 덕지덕지 붙었더라도 조금만 너그럽게 봐줄 수 없을까.

home 안준영 기자 andrew@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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