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뿌리가 무려 수천만원에 거래되기까지... 그러다 결국 사달 난 식물

2025-07-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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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삼' 사기 사건에 연루된 한국 식물

늦봄과 초여름에 산행길에서 만날 수 있는 백선(白鮮)이라는 식물이 있다. 흰색 꽃에 선명한 자색선이 들어간 이 아름다운 식물은 향기도 좋아 관상용으로도 사랑받는다. 이 야생화가 한때 거대한 사기극에 이용됐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뿌리 모양이 봉황을 닮았다는 이유로 '봉삼' 또는 '봉황삼'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얻은 백선은 10여 년 전 한 뿌리에 수천만원까지 거래되며 전국적인 사기 사건을 일으켰다.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백선은 운향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역의 산지에서 자란다. 비교적 고도가 낮은 숲속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줄기는 높이 60~90cm까지 자라고 밑부분이 딱딱하다. 잎은 어긋나며 작은잎 2~4쌍으로 된 깃꼴겹잎이다. 5~6월에 총상꽃차례로 연한 붉은색을 띤 꽃이 핀다. 꽃차례와 꽃자루에 기름구멍이 많아 독특한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백선이 '봉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 가네무라(今村)가 쓴 인삼사(人蔘史)라는 책에 만주지방에 뿌리 모양이 봉황을 닮은 삼이 있어서 봉삼이라고 한다는 기록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이는 인삼이나 산삼 가운데 봉황을 닮은 것을 봉삼이라고 한다는 뜻이지 봉삼이라는 식물이 따로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이 백선을 산삼보다 약효가 뛰어난 희귀 약재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한 장군이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고생하다가 백선 뿌리를 먹고 완치됐다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백선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장군은 맛이 몹시 써서 먹기가 고약했지만 날로 조금씩 먹어야 효과가 난다고 해서 조금씩 먹었더니 어느 사이에 알레르기성 비염이 완전히 나았다고 했다. 그는 그 뒤로는 지금까지 감기에도 한 번 걸리지 않을 만큼 몸이 건강해졌다고 주장했다.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백선은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했다. 간이 심하게 나빠서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한 여성이 백선 뿌리를 담가 만든 술을 마시고 완전히 나았다는 이야기, 폐결핵과 위장병, 천식, 관절염이 나았다는 사례들이 입소문을 탔다. 일부 승려가 백선을 팔아 한 해에 100억 원 이상을 벌어 대규모 절을 여러 채 지었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돌았다.

급기야 일부 한의사나 약초 전문가까지 나서서 봉삼이 산삼을 능가하는 선약이라고 떠들어댔다. 유명 신문에 한 스님이 꿈에서 계시를 받아 큰 봉황을 여러 뿌리 캔 수억원짜리 백선을 자선단체에 기증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백선이 한 뿌리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거래되는 일이 벌어졌다.

백선에 대한 환상은 곧 현실과 충돌했다. 백선을 무분별하게 복용한 사람들에게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이 보고한 사례에 따르면 50대 여성이 백선 뿌리를 달인 물을 마시고 광범위한 간세포 괴사가 발생해 사망했다. 해당 여성은 백선이 몸에 좋다는 말을 듣고 직접 채취해 8주가량 백선 뿌리 달인 물을 하루에 4, 5잔씩 마셨다. 건강이 좋아지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식욕 저하와 체중 감소, 황달, 복부 통증 등이 나타났다. 의료진이 치료와 함께 간 이식을 권유했지만 환자는 개인 사정으로 간 이식을 거부했고, 끝내 사망했다.

국내 학계에만 봉삼으로 인한 간 독성 사례가 30건 이상 보고됐다. 복용 중단 후 간기능이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간부전이 진행돼 사망하거나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 만큼 그 위험성이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백선의 어떤 성분이 어떤 부작용과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백선을 복용했을 때 독성 간염이 발생할 수 있고, 이것이 간부전으로 진행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의학계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백선을 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식물로 분류하고 있다. 식약처는 "백선은 식품에 사용할 수 없는 식물로 식품으로 만들거나 섭취하면 안 된다"며 "식품위생법에서 금지하고 있다"고 명확히 밝혔다. 하지만 백선으로 만든 차나 식품 등을 온라인을 통해 판매했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백선은 정말 아무런 약효가 없는 식물일까. 전통적으로 백선의 뿌리껍질은 백선피(白鮮皮)라는 이름으로 한약재로 사용돼 왔다. 한약재 시장에서는 600g에 2000~3000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흔한 약재다. 백선피는 양 냄새가 난다고 해서 백양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백선 / 국립생물자원관

본초학과 동의학 사전에 따르면 백선피는 회충, 간헐열, 머리아픔, 류마티즘, 척수신경근염, 뇌막염, 월경장애, 황달에 사용되며, 열내림약, 거풍약, 진경약, 진정약, 오줌내기약으로 쓰인다. 또한 습진, 사상균성 피부질환, 태선, 악창, 고름집, 포경, 옴, 두드러기, 대머리 등 각종 피부질환에 뿌리를 달여서 바르는 용도로 사용된다.

민간에서는 씨를 달여서 기침과 목구멍 카타르에 먹기도 하고, 전초를 달여서 가래를 삭이는 데 쓰기도 한다. 전초를 달여서 무좀에 바르거나 담그면 낫는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알레르기성 비염, 기침, 천식, 간염 등에 효과가 있다는 사례들이 보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용법과 봉삼 사기 사건에서 벌어진 무분별한 복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한약 처방에서는 백선피를 다른 약재와 함께 적절한 비율로 배합해 사용하며, 용량도 엄격히 제한한다. 반면 봉삼으로 둔갑한 백선은 뿌리 전체를 장기간 대량으로 복용하는 방식이었다.

백선을 약재로 활용할 때는 반드시 뿌리 가운데 박힌 심(목심)을 제거해야 한다. 안 그러면 간 기능 장애 등 예기치 않은 화를 입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꽃이 피기 전에 캐내어서 속의 딱딱한 심부를 빼낸 다음, 햇볕에 잘 말려서 잘게 썰어서 사용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런 복용법조차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데다 정부가 식품에 사용할 수 없다고 밝힌 만큼 자제해야 한다.

백선이 '봉삼'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며 벌어진 사기 사건은 단순히 경제적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생명을 잃거나 간 이식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건강 피해까지 초래했기 때문이다. 이는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인터넷상에서는 백선을 봉삼이나 봉황삼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려는 시도들이 간간이 발견된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식품위생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범죄 행위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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