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역주행 9명 사망' 그후 1년... 당황스러운 '고령운전 통계'가 발표됐다

2025-07-0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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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 급증하는데 면허 반납률이...

지난해 7월 1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69세 운전자의 역주행으로 9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친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사건은 고령 운전자 사고의 심각성을 충격적으로 드러냈다. 문제는 이후에도 유사한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는 점이다.

2024년 7월 1일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당시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는 모습. / 뉴스1
2024년 7월 1일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당시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는 모습. / 뉴스1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2020년 3만 1072건에서 2023년 4만 2369건으로 36.4%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는 20만 9654건에서 19만 6349건으로 줄었지만, 고령 운전자 사고 비율은 14.8%에서 21.6%로 치솟으며 200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청역 사고 운전자 차모 씨는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혼동해 사고를 냈지만, 1심 재판에서 금고 7년 6개월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에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을 주장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접수된 401건의 급발진 의심 신고에 대해 단 한 건도 급발진이란 결론을 내지 못했다. 85%(341건)가 페달 오조작이 원인으로 확인됐으며, 이 중 60대 이상 운전자가 255건으로 70%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60대가 44.9%, 70대가 26.9%, 80대가 2.9%로 고령층의 페달 오조작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고령 운전자의 사고 증가 원인은 노화로 인한 신체 기능 저하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의 브레이크 반응속도는 2.28초로 비고령 운전자(1.20초)의 2배에 이른다. 시야각도 젊은 운전자의 120도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어 위험 상황 대처가 어렵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2019~2024년 페달 오조작 사고 분석에서도 25.7%가 65세 이상 운전자였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은평구 연서시장 사고와 강북구 햄버거 가게 돌진 사고 모두 고령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발생했다.

2024년 7월 1일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에서 60대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앞 범퍼가 사라지고 보닛 부분이 강한 충격으로 찌그러진 차량이 견인 차량에 매달려 있다. / 뉴스1
2024년 7월 1일 서울 중구 시청역 교차로에서 60대 남성이 몰던 차가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앞 범퍼가 사라지고 보닛 부분이 강한 충격으로 찌그러진 차량이 견인 차량에 매달려 있다. / 뉴스1

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 조건부 운전면허제는 야간이나 고속도로 운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논의되지만 아직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서울시는 2023년 9월 국민권익위원회와 토론회를 열어 중앙정부에 이 제도 도입을 건의했지만 진전이 더디다.

조건부 면허가 고령자의 안전한 운전을 돕는 기회라는 사회적 인식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지만 실제 시행은 요원하다. 운전면허 자진 반납도 활성화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면허 반납 시 20만~50만원의 교통카드를 지급하지만 반납률은 3%대에 그친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 517만 명 중 반납률은 2.2%다. 2020년 368만 명 시절과 큰 차이가 없다. 생계나 이동의 어려움 때문에 고령층이 면허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도입도 지지부진하다. 이 장치는 차량 앞뒤 센서와 카메라로 장애물을 감지해 급가속을 억제한다. 한국교통안전공단과 경찰청은 지난해 8월에서야 800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보행 환경 개선은 일부 진전이 있다. 서울시는 시청역 사고 후 8톤 차량이 시속 55km로 충돌해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차량용 방호울타리를 설치했다. 기존 울타리는 미터당 20만원이었지만, 새 울타리는 40만원으로 강화됐다. 또한, 58개 일방통행 구간에 LED 교통표지판을 설치하고, 사고 우려 지역 101곳에 방호울타리를 추가로 설치 중이다.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 보장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7.3%로 OECD 1위다. 농촌 지역의 열악한 대중교통, 생계유지를 위한 운전 수요는 면허 반납을 어렵게 한다. 택시비 지원, 대체 이동 수단을 다양화, 생필품 무료 배송 등이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일본은 2019년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87세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11명이 죽거나 다친 사고가 발생하자 신속하게 대응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2028년 9월부터 신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탑재를 의무화한다. 이미 2023년 기준 현지 생산 차량의 90% 이상이 이 장치를 장착했다. 이 장치는 전방 1.0~1.5m 내 장애물을 감지해 급가속 시 속도를 시속 8km 미만으로 제한한다. 일본은 또한 7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 능력 평가를 강화하고, 치매 진단을 받은 경우 면허를 즉시 취소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2022년부터는 고령 운전자가 안전장치가 장착된 ‘서포트카’ 구매 시 보조금을 제공하며, 2023년 기준 70세 이상 운전자의 30%가 이 차량을 이용 중이다.

영국은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주기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70세 이상 운전자는 3년마다 면허 갱신 시 건강 진단과 간단한 운전 테스트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시력, 반응속도, 판단력을 점검하며, 필요할 경우 야간 운전이나 고속도로 운전을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를 발급한다. 영국 교통부는 지역별로 고령자를 위한 무료 셔틀버스와 커뮤니티 교통 서비스를 확대해 면허 반납 후에도 이동성을 보장한다. 2023년 기준 영국 내 70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반납률은 한국보다 훨씬 높은 약 15%다.

호주는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 보장에 중점을 둔다. 뉴사우스웨일스주는 75세 이상 운전자에게 연간 운전 테스트를 의무화하며, 면허 반납 시 지역 교통 바우처를 제공한다. 이 바우처는 택시, 공유 차량, 지역 버스 이용 시 사용할 수 있다. 2023년 기준 반납자의 40%가 이 제도를 활용했다. 호주는 또한 농촌 지역에 ‘도어투도어’ 교통 서비스를 운영해 고령자가 병원이나 마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서비스는 지역 자원봉사자와 협력해 운영되며, 2022년 기준 이용자의 60%가 65세 이상이었다.

한국도 이와 같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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