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완파 대역전극…일본 누르고 20년 만에 기적 이룬 한국 여자 축구팀
2025-07-1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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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축구, 동아시안컵 대만 2-0 완파해 우승
한국 여자축구가 20년 만에 동아시안컵 왕좌를 탈환했다. 초반 두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지 못한 채 위태롭게 출발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며 대회 우승을 거머쥐는 극적인 반전을 써냈다. 이 우승은 경기 종료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끝에 일본의 기대를 무산시킨 결과이기도 했다.

신상우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대만을 2-0으로 꺾었다. 이 승리로 1승 2무, 승점 5를 기록한 한국은 중국, 일본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이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2005년 초대 대회 이후 20년 만이며, 그 사이 일본이 4회, 북한이 3회 정상에 올랐다.
한국은 대회 초반 중국과 2-2, 일본과 1-1로 비기며 승점 2에 머물렀다. 중국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4분에, 일본전에서는 후반 41분에 극적인 동점 골을 터뜨리며 가까스로 승점을 챙겼다. 반면 일본과 중국은 대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승점 4를 먼저 확보했다. 최종전을 앞둔 상황에서 한국은 승점 2로 3위, 일본과 중국이 각각 승점 4로 1,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은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본과 중국 중 어느 한 팀이 승리하면, 한국은 대만과의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우승에서 멀어지게 된다. 유일한 희망은 일본과 중국이 무승부를 기록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에 따라 한국이 대만을 이기면 세 팀 모두 승점 5로 동률을 이루게 된다. 대회 규정에 따라 세 팀 간 상대 전적 승점, 골 득실, 다득점순으로 순위를 가리게 되므로, 한국은 이 조건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우의 수는 더 복잡했다. 일본과 중국이 2-2 이상 스코어로 비길 경우, 한국은 대만을 이기더라도 다득점에서 밀려 우승이 불가능해진다.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는 두 팀이 0-0으로 비기는 것이었고, 그 경우 한국은 대만을 1골 차로만 이기면 다득점에서 앞서 우승이 가능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일본과 중국은 0-0으로 경기를 마쳤다. 이로써 한국은 대만을 상대로 단 1골 차 승리만 거두면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후반 중반까지 골은 터지지 않았고, 우승 가능성은 점차 멀어지는 듯 보였다.

경기 흐름을 주도하고도 골문을 여는 데 실패하던 한국은 후반 25분, 강채림이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이를 지소연이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균형을 깨뜨렸다. 이후 후반 40분, 김혜리와 장슬기의 협력 플레이로 추가 골을 터뜨리며 사실상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골은 단순한 추가 득점이 아니라, 우승을 확정 짓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일본에는 절망을 안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경기는 2-0으로 마무리됐다. 이 결과로 한국, 일본, 중국은 모두 승점 5로 동률을 이뤘지만, 상대 전적 다득점에서 한국이 가장 앞서며 1위를 차지했다. 중국과 일본은 그 뒤를 이었다. 이로써 대역전극을 쓴 한국은 20년 만에 다시 한번 정상에 오르게 됐다.
역시나 끝까지 한국-대만전을 지켜본 일본에서는 아쉬움과 좌절을 드러내는 보도가 쏟아졌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일본은 여자부 3연패와 함께 2회 연속 남녀 동반 우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앞두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경기가 끝난 직후 일본 현지 언론은 빠르게 이 소식을 전했다. 산케이스포츠는 "일본이 동아시안컵 3연패 도전에 실패했다. 한국이 상대 전적 다득점에서 앞서 우승을 차지했다"고 보도했고 니칸스포츠 역시 "한국이 20년 만의 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며 일본의 패배를 전했다.
이번 대회는 한국 여자축구가 보여준 끈질긴 승부 근성과 집념이 빛난 무대였다. 극적인 동점 골들, 복잡한 경우의 수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의 집중력,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승을 확정 지은 승부사적인 감각이 어우러지며 완성된 결과였다. 20년 전 첫 우승 이후 오랜 시간 다시 정상을 꿈꿔온 한국 여자축구에 있어 이번 대회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단순한 승리 이상의 값진 성과였고, 향후 한국 여자축구 발전에도 긍정적인 자극이 될 만한 장면이었다.

대표팀을 이끈 신상우 감독은 경기 직후 기자회견에서 감격스러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 감독은 "선수들과 묵묵히 지원해 준 스태프진에게 고맙다. 정말 기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대회 전 기자회견 때 '축구는 (FIFA)랭킹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증명해 준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경기 전 미팅에서 '간절히 원하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1%의 가능성이 현실이 됐다. 정말 기쁘다"라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승이 간절한 건 신 감독만이 아니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신 감독은 "소집 첫날부터 선수들의 눈빛이 달랐다. 특히 고참들의 간절함이 느껴졌고 어린 선수들이 잘 따랐다. 훈련을 지켜보며 '우승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완성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이번 우승이 신구 조화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선수들에게 오늘 하루는 마음껏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저 역시 오늘만 즐기고 10월까지 열심히 선수들을 관찰하러 다니겠다"라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