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야?... 한국 전역이 푹푹 찌는데 '전기장판' 틀고 자는 지역
2025-07-2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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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도 솜이불 덮는 곳으로 유명한 이 도시

전국이 가마솥처럼 끓는 요즘에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전국 183개 시·군·구 가운데 180곳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27일 기상청 폭염지도에서 색조차 입지 않은 지역은 단 세 곳뿐이다. 제주 산간, 제주 추자도를 제외한 유일한 내륙 도시가 강원 태백시다. 여름나라의 눈꽃마을이라도 되는 것처럼 선선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단순히 기분 탓은 아니다. 같은 날 인근 정선군은 체감온도 36.5도, 삼척시는 37도를 기록했지만 태백의 최고 체감온도는 32.5도였다. 폭염주의보 기준인 33도를 넘지 않은 것이다. 이쯤 되면 그냥 덜 더운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계절 속에 있는 도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백은 애초에 ‘시원함을 품고 태어난 도시’다. 도시 전체가 해발 900m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서울 남산의 세 배가 넘는 고도다. 대기과학에 따르면 고도가 100m 올라갈 때마다 기온은 약 0.6~1도씩 낮아진다. 고도 900m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여름날 한낮 더위를 억누르는 천연 방어막인 셈이다.
태백의 여름 평균 기온은 22도대다. 8월 평균 최고기온도 26도에 불과하다. 심지어 평균 최저기온이 20도도 안 된다. 열대야는 거의 없고 밤엔 선선함을 넘어 살짝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실제로 과거 몇 년간 여름철 태백을 찾았던 방문객들 사이에선 “태백에서 여름밤에 솜이불 덮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돌곤 했다. 네티즌들은 태백을 두고 “여름에 솜이불 덮는 도시”, “전기장판 튼다는 게 진짜냐?” 등의 반응을 보인다. 허풍은 아니다.
태백 시민들조차 “에어컨 없이 살았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밤에도 창문만 열면 서늘한 바람이 밀려들었고, 간혹 전기장판을 켜는 가정도 있을 정도였다.
다만 기후 변화의 그림자는 태백에도 서서히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8월 2일 드물게 태백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특히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13일 연속 평균기온이 25도를 웃돌았다. '시원한 왕국'이었던 태백도 더위의 물결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않은 것이다.
이런 변화는 농업도 위협하고 있다. 태백은 고랭지 채소의 대표 산지다. 그중에서도 배추는 이 도시를 상징하는 작물이다. 시원한 기후 덕분에 병충해가 적고 품질도 뛰어나 ‘김장철 귀족 배추’로 통했지만 최근 몇 년간 상황이 달라졌다. 이상고온과 강한 일사량에 배춧잎이 타 들어가고 수확량이 감소하면서 일부 농가가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초여름 고랭지 배추 작황이 흔들리면서 가격이 요동쳤다. 결국 이 영향은 늦가을 김장 시장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위가 태백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주민들의 생활도 달라졌다. 에어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지역 설치업체들은 주말도 없이 밤낮없이 일했다.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는 집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대형마트에는 휴대용 선풍기와 냉풍기, 쿨매트가 진열대 맨 앞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태백은 여전히 여름에 가볼 만한 도시다. 지금 같은 폭염 시기엔 살기 위해 떠나야 할 여행지에 더 가깝다.
한낮에도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의 언덕은 도심에서 차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다. 거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해발 1178m의 태백산 국립공원이 나온다. 정상에서 맞이하는 바람은 거짓말처럼 시리다. 하늘을 찌를 듯한 소나무 군락과 억새밭, 그리고 시야를 뚫고 들어오는 맑은 공기가 도시의 열기와 먼지를 한꺼번에 씻어낸다.
용연동굴도 태백 여름 여행의 포인트다. 해발 1000m에 위치한 이 동굴은 그 자체로 냉장고다. 내부 온도는 연중 약 10도로 유지된다. 동굴 안으로 한 발 들어서는 순간, 바깥의 더위는 온전히 차단된다. 겉옷이 필요하다는 안내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동굴 안은 서늘하고 습하며, 한기마저 감돌 정도다.
검룡소는 태백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여름 명소다. 한강의 발원지인 이곳에 가면 물이 솟아나는 계곡 바닥을 직접 볼 수 있다. 물온도는 섭씨 9도 안팎. 손을 담그면 금세 얼얼해질 정도로 시리다.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청량함을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