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론 많은데 한국엔 100마리뿐... 한국서 유독 멸종위기인 동물 정체

2025-08-02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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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흔한 텃새였는데...
고작 100마리... 외래종 유입으로 번식지 경쟁 낙오

전남 구례군에서 고흥군으로 이전 방사된 양비둘기 개체가 새끼를 낳은 갯바위 절벽 동굴. / 국립생태원
전남 구례군에서 고흥군으로 이전 방사된 양비둘기 개체가 새끼를 낳은 갯바위 절벽 동굴. / 국립생태원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비둘기. 그러나 우리가 도심에서 흔히 보는 집비둘기와 달리, 한반도 고유의 텃새인 양비둘기는 멸종의 위기에 내몰려 있다. 세계적으로는 여전히 안정적인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양비둘기. 인간의 활동과 외래종 유입이 생태계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양비둘기에 대해 알아봤다.

전남 고흥군 번식지 인근 밭에서 먹이활동 중인 양비둘기 방사 개체. / 국립생태원
전남 고흥군 번식지 인근 밭에서 먹이활동 중인 양비둘기 방사 개체. / 국립생태원

양비둘기는 비둘기목 비둘기과의 조류다.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 몽골,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한다. 원래 흔한 텃새였으나 외래종인 집비둘기의 유입으로 인해 번식지 경쟁에서 밀려나고 여러 잡종의 탄생으로 인해 매우 희귀해졌다. 낭비둘기, 굴비둘기라고도 불리는 이 새는 산간의 절벽이나 바위산, 다리 교각 등에서 무리 지어 살며 도시 근처로는 잘 접근하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양비둘기가 한국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집비둘기와의 경쟁과 교잡이다. 집비둘기의 원종인 바위비둘기가 대거 유입되면서 양비둘기는 번식지와 먹이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두 종 간의 교배로 인한 잡종화 현상이다. 양비둘기와 집비둘기는 친척 관계로 생김새가 매우 유사할 뿐만 아니라 교배가 가능해 순종 양비둘기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남부사무소 측이 2018년 7월 8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기자실에서 멸종위기 토종 텃새인 양비둘기가 지리산 사찰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스1 자료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남부사무소 측이 2018년 7월 8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기자실에서 멸종위기 토종 텃새인 양비둘기가 지리산 사찰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스1 자료사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양비둘기는 전국적으로 서식하는 흔한 텃새였다. 그러나 외래종 집비둘기의 유입과 도시화로 인한 서식지 파괴가 겹치면서 수가 급감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전남 구례의 화엄사가 양비둘기의 유일한 내륙 서식지로 알려졌지만, 2009년에는 이마저도 자취를 감췄다. 2011년 구례의 천은사에서 16마리의 양비둘기가 발견되면서 복원 사업이 시작됐다. 2017년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됐다.

양비둘기 보전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국립생태원이 2021년 실시한 전국 서식 범위 조사에서 기존 전남 구례군 지역 60여 마리에 이어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일대에서도 80여 마리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천 지역에서는 새로운 번식지 3곳이 발견됐다. 양비둘기들은 낮에는 임진강 주변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밤에는 교각의 틈이나 구멍에서 잠을 자는 생활 패턴을 보였다.

양비둘기 / 국립생태원
양비둘기 / 국립생태원

특히 주목할 만한 발견은 양비둘기의 지역 간 이동이었다. 연구진이 연천 지역 양비둘기 한 마리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한 결과, 이 개체가 북한 강원도 김화군 임남댐 인근까지 약 70km를 이동해 정착하는 것을 확인했다. 텃새로 알려진 양비둘기의 지역 간 이동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는 개체군 단위의 확산이나 미성숙한 개체의 분산 이동을 통해 지역 집단 간 교류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집비둘기와 양비둘기를 구분하는 것은 조류 전문가들도 어려워하는 일이다. 두 종은 외형이 매우 유사하지만 양비둘기만의 고유한 특징이 있다. 양비둘기의 가장 큰 특징은 꼬리 끝 쪽의 흰색과 검은색 배열, 그리고 꼬리와 허리 사이의 흰 부분이다. 색깔과 무늬가 다양한 집비둘기와 달리 양비둘기는 모든 개체가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 서식하는 양비둘기는 100리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흔한 종으로 간주되는 까닭에 한국에서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양비둘기 보전을 위해서는 집비둘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립생태원은 양비둘기 서식지 보전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집비둘기 관리와 신규 서식지 발굴을 위해 민관연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양비둘기의 번식 생태, 서식지 이용, 유전적 다양성, 증식 기술 개발, 위협요인 관리 등 개체군 보전을 위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양비둘기의 멸종위기는 단순히 한 종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생물다양성 보전의 중요성과 외래종 관리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경고다. 세계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한국에서만 멸종위기에 처한 양비둘기의 운명은 앞으로 우리가 생태계 보전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양비둘기 보전은 생태계뿐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복원은 지리산이나 연천 같은 지역의 생태문화 콘텐츠로 활용돼 지역경제 활성화와 생태문화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생물다양성 보전은 인류가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막기 위한 필수 과제다. 한국은 사계절과 지형적 요인으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지만 산림 생태계에 치우친 서식지와 유전적 다양성 연구의 부족은 보전 노력에 걸림돌이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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