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겹지 않고 끔찍하기까지 한 매미 소리, 세계서 한국만 유독 심한 이유가...
2025-07-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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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엔진에 맞먹는 소음공해... 알고 보니 환경 문제였다

여름날 저녁 퇴근길 도심을 가득 채우는 매미 소리는 더 이상 정겨운 자연의 합창이 아니다. 때로는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으로 변해 시민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히 들리는 덩치 큰 말매미의 울음소리는 해마다 그 강도와 지속 시간이 늘어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도시 환경이 말매미의 폭발적인 번식과 밀집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뜨거워진 도시의 심장이 매미떼를 키우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말매미는 본래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하는 곤충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노린재목 매미과에 속하는 말매미의 몸길이는 수컷이 약 4.5~5.5cm, 암컷이 약 3.5~4.5cm 정도다. 한국에서 가장 큰 매미다. 몸은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띠고 있으며, 등면에는 황갈색 무늬가 있다. 날개는 투명하지만 날개맥은 갈색을 띤다. 땅속에서 유충으로 긴 시간을 보내다가 여름철에 성충으로 우화해 짧은 시간 동안만 지상에서 활동한다. 유충은 나무뿌리의 수액을 빨아먹고 성장하며, 성충이 돼서야 땅 밖으로 나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수컷 매미는 배 쪽에 있는 발음기관을 이용해 독특한 소리를 내 암컷을 유인한다. 이 소리가 바로 우리가 여름 내내 듣는 매미 소리의 정체다.
한국 도심의 말매미 개체수 급증과 밀집 현상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단순히 여름이 돼서 매미가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을 넘어섰다.
이러한 현상의 주범으로 전문가들은 도시의 열섬 현상을 지목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건물들이 햇빛을 흡수하고 열을 방출하면서 도심의 온도는 주변 교외 지역보다 훨씬 높아진다. 말매미는 고온 환경에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울음소리를 내는 특성이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서울 도심의 말매미 밀도는 경기도 농촌보다 약 10배 정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도시의 높은 기온이 말매미의 생존율과 번식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일본 오카야마 시의 연구에서도 도시 열섬 현상으로 인한 국지적인 온도 상승이 매미의 성충 출현 시기를 앞당기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처럼 도시 열섬 현상은 동아시아 지역 전반에 걸쳐 매미 생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한국의 도심에서 특히 말매미 개체수가 폭증한 배경에는 도시화 속도와 양상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열섬 현상 외에도 인공조명(빛 공해)이 말매미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밤에도 환하게 켜진 도시의 불빛은 말매미의 생체 리듬을 교란해 밤낮없이 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매미는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휴식을 취하지만, 도심의 밝은 인공조명은 이들의 활동 시간을 연장시켜 매미 소음이 지속되는 시간을 늘리는 데 기여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도시의 빛 공해가 곤충의 생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매미 역시 이러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매미의 도심 습격은 비교적 최근에 가속화됐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말매미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1990년대 초 이후 급격하게 개체수가 늘기 시작했다. 특히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지역에서 말매미의 출현 비율이 높아졌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아파트 단지 내 조경수들이 매미 유충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아파트 단지의 밀집도가 열섬 현상을 더욱 심화시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빽빽한 아파트 숲이 도시의 온도를 높이고, 그 열기가 다시 말매미를 불러모으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북미 지역에는 한국의 말매미와는 다른 양상으로 매미가 출현한다. 북미의 주기매미(Periodical Cicadas)는 13년 또는 17년이라는 긴 주기로 땅속에서 지내다가 특정 해에 수십억 마리가 한꺼번에 성충으로 우화해 대발생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들의 울음소리 또한 매우 크고 압도적이지만 특정 기간에만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이후에는 다시 오랜 기간 지하에서 생활한다.
이와 달리 한국의 말매미는 매년 여름철에 지속적으로 출현한다. 특히 도시화로 인한 환경 변화에 적응해 개체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훨씬 다양한 종류의 매미가 서식하며, 일부 종은 금속을 자르는 듯한 소리, 사이렌 소리 등 기상천외한 울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 지역의 매미들 역시 뜨거운 기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처럼 도시 환경 변화와 맞물려 말매미의 개체수 증가는 시민들에게 심각한 소음 공해로 다가오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말매미 울음소리는 최고 90데시벨(dB)에 달하는데, 이는 전동 드릴 소리나 오토바이 엔진 소음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런 소음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매우 구체적인 불편함을 안긴다.
첫째, 수면 방해가 심각하다. 여름밤에 창문을 열고 자야 하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매미 소리는 숙면을 방해한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매미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잠이 부족하면 다음 날 업무나 학업 효율이 떨어지고, 만성 피로에 시달릴 수 있다. 불면증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둘째, 일상생활의 집중력을 저해한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을 때, TV를 볼 때도 매미 소음은 끊임없이 들려와 집중을 방해한다. 특히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업무 효율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돼버렸다. 온라인 회의 중에도 매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와 대화에 방해가 됐다는 사례도 흔하다.
셋째, 스트레스와 짜증을 유발한다. 반복적이고 고음의 소리는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고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밤새도록 매미 소리에 시달리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괜히 짜증이 나서 가족들에게도 날카롭게 반응하게 된다"는 시민 증언은 이러한 불편감을 잘 보여준다. 심지어 매미 소리 때문에 여름철에는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 소음을 차단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이는 전기 요금 증가로 이어져 경제적 부담도 추가한다.
넷째, 야외 활동의 질을 떨어뜨린다. 공원이나 산책로에서도 매미 소음은 예외가 아니다. 조용히 자연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려 해도 매미들의 합창은 소음 공해로 다가와 휴식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카페나 식당의 야외 테라스에서도 매미 소리 때문에 대화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에서도 도심의 매미 소음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특정 종인 말매미가 도시 열섬과 결합해 매년 강도 높은 소음 공해를 유발하는 한국 사례는 비교적 특수하게 여겨진다.
말매미 소음 문제는 단순히 시끄러운 것을 넘어선 환경 문제로 인식돼야 한다. 도시가 스스로 뿜어내는 열과 빛이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고, 그 결과가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도시화가 더욱 심화하고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고온 현상이 잦아진다면 한국 도심에서의 말매미 습격은 더욱 빈번하고 강력해질 수 있다.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빛 공해를 줄이는 등 환경 개선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여름마다 매미의 굉음 속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은 계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