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한 산악인, 담도암 투병 중 사망…갑작스레 전해진 비보
2025-07-3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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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극점·7대륙 최고봉 정복한 선구자
한국 산악사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렸던 허영호 대장이 29일 오후 8시 9분 담도암 투병 끝에 영면했다. 향년 71세.

허 대장의 비보는 30일 연합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지난해 12월 담도암 판정을 받고 투병해온 그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8개월간 병원 치료와 항암 치료를 병행해왔으나, 회복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8월 1일 오전 10시 40분에 진행된다. 장지는 충북 제천 선영인 것으로 전해졌다. 허 대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충북 제천 출신인 고인은 제천고와 청주대를 졸업한 후 본격적인 산악인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 산악계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킨 그는 1987년 겨울 에베레스트(8848m) 등정에 성공한 한국 최초의 인물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대기록이었다. 이후 2017년에는 63세의 나이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며, 당시 국내 최고령 등정 기록과 최다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총 6회)을 모두 갈아치웠다.
허 대장은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한 세계 최초의 인물로도 기록됐다. 에베레스트(1987), 남극점(1994), 북극점(1995)을 모두 밟으며 '3극점 탐험가'로 명성을 얻었고, 남미 아콩카과(6959m), 북미 매킨리(6194m),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오세아니아 칼스텐츠(4884m), 유럽 엘부르즈(5642m), 남극 빈슨 매시프(5140m)까지 등정하며 7대륙 최고봉 정복도 완수했다. 이는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 압도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체육훈장 기린장(1982), 거상장(1988), 맹호장(1991), 청룡장(1996)을 수여했다. 체육훈장 네 등급 모두를 수훈한 인물은 극히 드물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허 대장의 도전은 등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어릴 적 꿈이었던 파일럿을 실현하기 위해 1998년 초경량 항공기 조종면허를 취득하고 비행기 모험가로 인생의 방향을 넓혔다. 그 결과 2008년에는 여주에서 제주까지 약 1000km 단독 비행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독도·마라도·가거도를 순회하며 국토 외곽 1800km 단독 비행을 마쳤다.
하지만 2007년에는 전남 청산도 인근 해상에서 비행 중 엔진이 멈추는 사고를 당해 바다에 불시착하는 위기도 있었다. 당시 그는 근처를 지나던 가스 운반선에 구조되며 가까스로 생명을 건졌다. 이 사고 이후에도 그는 다시 비행에 나섰다.

고인은 다양한 강연과 매체 활동을 통해 "산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도전은 삶의 이유" 등의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산악인들이 고산 등반과 같은 극한 도전에 나서는 이유는 단순한 모험심을 넘어선 내면의 갈망과 철학이 작용한다.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는 명언처럼 허 대장 역시 존재 자체가 도전의 이유였던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했고, 성취의 순간마다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겼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심과, 고통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자세는 그가 왜 죽는 날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는지를 설명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룬다'는 말을 남긴 허영호 대장은 생의 마지막까지도 한국 산악계 이정표로 남아 있다. 그가 남긴 기록은 단지 숫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불굴의 정신, 끈질긴 생존력, 도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의 집합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