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사별 후 20년간 성관계 없었는데... 85세 한국할머니 HIV 감염 미스터리

2025-08-07 09:24

add remove print link

수년 전 이미 HIV에 감염됐을 가능성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픽사베이 자료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픽사베이 자료사진.
남편과 사별 후 20년간 성관계를 하지 않고 병원 진료도 거의 받지 않은 80대 할머니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판정을 받으면서 의학계 주목을 받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7일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국내 한 시골 마을에 홀로 살고 있는 80대 할머니가 갑자기 HIV 감염 판정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도 80세 이후 고령에서 HIV가 진단된 사례는 드물다는 점에서 의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HIV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이즈)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HIV에 감염되면 인체 면역 시스템이 점차 약화하고 일정 수준 이하로 면역력이 떨어진다. 기회감염(면역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평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던 미생물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이나 악성 종양 등이 발생하면 에이즈 환자로 진단된다. 국내 HIV 감염자의 80% 이상은 20~40대에 집중돼 있다.

국제학술지 '임상 사례 보고'(Clinical Case Reports)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의료진은 최근 논문을 통해 지난해 림프종 항암제 치료 전 시행한 혈액검사에서 HIV 양성 판정을 받은 A(85) 씨의 사례를 보고했다.

A씨는 약 20년 전 남편이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뒤 줄곧 시골에서 혼자 살아왔다. 이후 성관계도 없었다고 가족과 본인은 진술했다.

남편은 대학병원에 입원해 여러 차례 시술과 검사를 받았지만, HIV에 감염된 상태였다는 가능성은 낮다고 가족은 주장했다.

A씨는 림프종 진단 전까지 수술이나 입원, 수혈, 주사 약물 사용, 침술, 문신 등 HIV 감염 가능성과 연결되는 의료적 처치를 받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로 거주 중인 두 아들은 검사 결과 HIV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의료진은 A씨의 면역세포(CD4) 수치가 높고 바이러스 농도가 높은 점을 근거로 수년 전 이미 HIV 감염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런 추정은 A씨와 가족 진술만으로는 파악되지 않은 의료 처치나 성적 접촉 등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의료진은 감염 경로보다 고령자에 대한 HIV 진단 체계 자체가 부재한 현실을 지적했다.

논문에선 "고령자의 성생활을 배제하거나 HIV를 노인의 질환으로 보지 않는 편견이 진단 지연의 큰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사회적 고립과 낮은 건강 정보 이해력도 진단이 늦어지는 데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현재 HIV 검사는 주로 13~64세를 중심으로 권장되고 있으며, 8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선별검사 기준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고령이라는 이유 자체가 HIV 진단의 사각지대가 되는 셈이다.

A씨는 문맹 상태였고 'HIV'라는 용어조차 알지 못했다. 의료진과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건강 관련 정보에 대한 이해력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통해 고령자에게도 HIV 검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거나 건강 정보 접근성이 낮은 노인의 경우 선제적인 진단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일산병원 의료진은 연합뉴스에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HIV 치료 효과가 떨어질 것이란 선입견은 오해"라며 "A씨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에 잘 반응했고, 면역 수치가 서서히 회복됐다"고 전했다.

home 채석원 기자 jdtimes@wikitree.co.kr

NewsC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