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인데…7마리 다닥다닥 모여 있던 최대 90kg '멸종위기동물'
2025-08-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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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는 최대 12개체까지 확인
국내서 유일하게 육역에서 관찰 가능한 지역
천연기념물 제331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인 점박이물범이 올해도 충남 서산·태안의 가로림만을 찾아왔다. 해양보호생물 가운데서도 국내에서 육지에서 관찰이 가능한 유일한 지역이기에, 이들의 출현은 가로림만의 생태적 가치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난 13일 충청남도에 따르면, 서산태안환경교육센터가 전날 가로림만 일대에서 실시한 정기 모니터링에서 점박이물범 10개체가 확인됐다. 이날 목격된 개체들 중 7마리는 모래톱 위에 다닥다닥 모여 휴식을 취했고, 나머지는 인근 해역을 유유히 헤엄쳤다.
가로림만은 2016년 국내 최초·최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매년 10개체 내외의 점박이물범이 관찰된다. 특히 2021년에는 12마리까지 확인되며 국내 점박이물범 서식지로서의 중요성을 입증했다. 겨울에는 중국 랴오둥만에서 번식한 뒤, 봄이 되면 먹이와 휴식처를 찾아 가로림만으로 이동해 여름과 가을을 보낸다.
전문가들은 가로림만이 점박이물범에게 매력적인 서식지인 이유를 ‘지형과 먹이 환경’에서 찾는다. 얕은 수심에 넓은 모래톱이 발달해 있어 휴식 공간이 충분하며, 주변 해역에는 멸치·전어·꽃게 등 먹이가 풍부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육지에서 이들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장소가 됐다.

이번 모니터링에는 세계자연기금(WWF)도 참여했다. WWF는 앞으로도 정기 조사에 협력하며 개체 수 변동, 이동 경로, 서식 환경 변화 등을 장기적으로 기록할 예정이다. WWF 관계자는 “가로림만 점박이물범의 안정적 서식은 서해 연안 생태계 건강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강조했다.
충남도는 이러한 생태적 가치를 토대로 가로림만 국가해양생태공원 조성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 타당성 재조사에서 아쉽게 부결됐지만, 이후 4,400억 원 규모의 종합계획을 재수립했다. 올해 4월에는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통과를 목표로 대응 용역에 착수했으며, 내년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조진배 충남도 해양정책과장은 “올해도 점박이물범이 모습을 드러내며 가로림만의 생태적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며 “명품 생태공원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점박이물범은 지난달 강원 강릉 앞바다에서도 출현해 눈길을 끌었다. 7월 28일 정오께 강릉 사근진 해수욕장 인근에서 2마리가 유영하는 모습이 피서객들에게 목격됐다. 해변이 붐비는 한낮에도 물범들은 수 시간 동안 바다를 헤엄쳤고, 이를 촬영한 시민 제보로 언론과 학계에 알려졌다.

당시 제보자는 해당 동물을 ‘물개’로 오인했지만,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영상을 분석한 결과 유영 방식과 외형, 발견 위치를 근거로 점박이물범이라고 판단했다. 물개와 물범은 모두 기각류로 외형이 비슷하지만, 물개는 귀가 밖으로 돌출된 외이 형태에 앞지느러미가 길고, 물범은 귀가 보이지 않는 내이 형태에 앞지느러미가 짧다는 차이가 있다.
점박이물범은 피부에 특유의 점박이 무늬가 있으며, 성체 기준 길이 1.4m, 무게는 최대 90kg에 달한다. 앞머리가 둥글고 목이 짧으며, 뒷다리가 뒤쪽으로 향해 있어 육지 이동이 불편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나 민물에서 보내며, 육지 생활에는 부적합하다.
이들은 포유류임에도 물속 생활에 특화된 진귀한 해양동물로, 멸종위기와 서식지 파괴 위협으로 인해 198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현재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해양보호생물로도 보호받고 있으며, 포획·훼손은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된다.
전문가들은 점박이물범을 비롯한 해양포유류 관찰 시 일정 거리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고래연구소 김소라 연구사는 “사람을 먼저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야생동물인 만큼 스트레스를 주는 근접 촬영이나 소음 유발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가로림만에서 포착된 7마리의 ‘다닥다닥’ 장면은 단순한 귀여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가로림만이 여전히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멸종위기종 보전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상징적 장면이다.
충남도와 환경단체들은 점박이물범의 서식 안정과 번식 가능성 확보를 위해 해양보호구역 관리 강화, 불법 어업 단속, 친환경 관광 프로그램 개발 등 다각적인 노력을 이어갈 방침이다. ‘90kg의 바다 수호자’라 불리는 점박이물범이 앞으로도 가로림만 모래톱 위에서 다닥다닥 모여 쉬는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