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에 되새기는 '황족 독립운동가'
2025-08-1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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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이강 제70주기 추모제향 봉행

광복 80주년을 맞은 8월 15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홍유릉에서 대한제국 황족이자 독립운동가인 의친왕 이강(1877~1955)의 서거 70주기를 기리는 기신제향이 궁중예법에 따라 성대히 거행됐다. 대한황실 후손 20여 명과 독립운동가 후손, 문화예술계 인사 등 300여 명이 참석해 잊혀진 황실 독립운동사를 되새겼다.
고종황제의 차남인 의친왕 이강은 1897년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의친왕으로 책봉됐다. 일본 유학과 미국 로녹대학 수학을 거치며 김규식·안창호 등과 교류해 해외 독립운동 인맥을 구축했다. 귀국 후 대한제국 육군 부장(3성 장군)으로 임관해 군대를 통솔하고,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임명돼 서양의학을 국내에 적극 도입하는 한편 사동궁을 비밀 독립운동 거점으로 운영했다.
의친왕은 1912년 세운 봉황각이 훗날 3·1운동의 발상지가 되는 등 항일투쟁의 중심 역할을 했다. 안창호·김가진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한 그는 1915년엔 신한혁명당의 고종황제 북경 망명 시도에 연루됐다. 이로 인해 그의 측근들이 대거 투옥되기도 했다.
1919년 고종 독살설이 확산하자 의친왕은 독립신문에 친필 성명을 발표해 ‘조국의 독립과 세계 평화를 위한 투쟁’을 선언했다. 안창호 당시 국무총리는 비밀작전 ‘의친왕을 임시정부로’를 추진했고, 의친왕은 "차라리 자유 한국의 백성이 될지언정 일본 황족이 되지 않겠다"는 편지를 임시정부에 보냈다. 조선 최대 항일비밀결사 대동단의 명예 총재로서 독립운동 단체 통합에도 힘썼다.
이날 제향에는 초헌관으로 의친왕의 장손 이준 황손, 아헌관으로 연안김씨 대종회 김사권 회장, 종헌관으로 세종대왕 사가독서 이찬희 이사장이 제관으로 참여했다. 오전 10시 30분 영원 재실에 모인 사동궁 후손, 세종대왕 사가독서의 사육신·생육신 후예, 연안김씨 및 여흥민씨 후손 등 300여 명의 참석자는 의친왕 묘역까지 산릉행렬을 이어가며 엄숙히 참배했다.
제향을 마친 후 참석자들은 인근 식당에서 함께 오찬을 나누며 의친왕의 독립정신과 애국충절을 기렸다.
이준 황손은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사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철저히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잊혔다"며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대한황실에 잘못 씌워진 식민사관 프레임을 거둬내고 황실 항일운동사와 의친왕의 재조명이 이뤄져 그분의 정신을 후대에 잊지 않게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 황손은 고종황제의 장증손이자 의친왕의 장손이다. 1961년 덕수궁에서 태어났다. 고종황제의 장남인 순종이 후사가 없이 별세함에 따라 차남 의친왕의 장손인 이준 황손이 고종의 장증손으로서 구 황실 가족들을 이끌며 의친왕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황실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한편 조선 왕릉 40기는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나 의친왕묘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제향을 계기로 홍유릉 내 의친왕묘의 세계유산 등재를 재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의친왕이 거주하며 독립운동을 지휘했던 사동궁은 광복 후 여러 필지로 나뉘어 민간에 팔렸고, 마지막 남은 궁의 건물은 2005년 현재 인사동 공영주차장으로 변했다. 대한제국에 건립된 유일한 궁이자 황실 독립운동의 상징인 사동궁의 복원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의친왕은 1955년 별세 후 현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위치한 의왕릉에 안장됐으나, 골프장 개발로 서삼릉으로 이전됐다가 1996년 의친왕과 의친왕비 후손들의 주도로 홍유릉으로 이장됐다. 현재 고종황제, 순종황제, 영친왕, 덕혜옹주 등 황실 가족들과 함께 안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