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논에서 이렇게 신기한 게 자랄 줄이야… 농민들도 놀란 풍경
2025-08-2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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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정말 익숙한데… 정작 한국인들만 낯설어하는 식재료

연일 계속되는 기록적 폭염이 한반도 농업 지형을 바꾸고 있다. 동남아시아 열대지역에서나 볼 수 있던 길고 가는 '열대벼'가 전남 해남군에서 재배되고 있다고 MBC가 22일 보도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온현상이 일상이 됨에 따라 한국 농업계가 생존을 위한 근본적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체에 따르면 해남군에 위치한 축구장 140개 크기의 친환경 벼 재배단지에서 특이한 벼가 자라고 있다. 한국인이 평소 먹는 찰지고 둥근 '자포니카 품종'이 아니라 길고 가는 낟알을 가진 '인디카 품종', 즉 열대벼다.
열대벼와 한국 전통벼의 차이는 외관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재배하는 장립종 벼인 열대벼는 자랄 때 일반 벼보다 옆으로 두툼하게 성장한다. 반면 낟알은 한국 벼의 2배 가량 길쭉하고 얇은 형태를 띤다.
품종 특성상으로도 두 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자포니카 벼는 단립종으로 분류되며, 밥을 지었을 때 찰지고 끈기가 있는 식감을 제공한다. 반면 인디카 계통의 열대벼는 장립종으로, 밥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푸석한 식감을 갖는다. 또한 열대벼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내열성이 뛰어나며,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도 상대적으로 강하다.
아미로스 함량에서도 차이가 난다. 전분을 구성하는 성분인 아미로스는 포도당이 직선형으로 연결돼 나선 구조를 이루며 식감과 소화 속도에 큰 영향을 주는 다당류다. 자포니카 벼는 아미로스 함량이 15~20% 정도로 낮아 찰진 맛을 내는 데 반해 인디카 벼는 아미로스 함량이 20~25%로 높아 밥알이 서로 분리되는 특성을 보인다. 이 때문에 인디카 벼로 지은 밥은 볶음밥이나 카레라이스 등에 적합하다.
국내에서는 인기가 없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 쌀 유통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글로벌 주력 품종이다. 이 낯선 벼가 한국 땅에서 자라기 시작한 건 2023년부터다.
전국 최초로 자치단체 주도로 시범재배를 시작했고, 올해는 농촌진흥청과 대학, 대기업까지 참여하며 사업이 확대됐다. 기후변화 대응은 물론 늘어난 국내 외국인 수요에 대응하면서 가공밥 수출시장 진출까지 기대하고 있다.
땅끝황토친환경영농조합 윤영식 대표는 "지금 10여개 정도의 품종을 계속 시험 재배하고 있고, 그 중에 2개 품종은 상업화가 가능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업 확대에는 최근 일본의 쌀값 폭등 현상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밥쌀 공급 과잉에 대응해 1970년대부터 벼 재배 면적을 줄여온 일본은 2년 전 가을 밤낮없이 이어진 기록적 폭염으로 벼가 여물지 못하면서 1등급 쌀 유통량이 20% 가량 급감했다.
결국 시장에는 품질 좋은 쌀이 사라졌고, 쌀값은 폭등하며 쌀 대란이 발생했다. 일본을 따라 감산정책을 추진 중인 한국 정부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됐다.
'장립형 인디카벼 산업화 플랫폼 개발' 책임연구원인 진중현 세종대 교수는 "지금 경지 면적을 무작정 감소시켰다가는 기후변화라든지 여러 가지 정황을 봤을 때 잘못하면 급박한 문제에 대응할 수 없다"며 열대벼를 재배하면 소비자 변화에도 대응하고 수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지난해 9월은 역대 가장 더웠다. 벼가 여물어야 할 시기에 밤낮없는 고온이 이어지면서 쌀 품질은 떨어졌다. 올해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전남도 농업기술원의 신서호 농업연구사는 "또 가을 날씨가 지난해처럼 33도, 35도 고온으로 또 유지된다면 결국에는 품질 좋은 쌀 생산량에는 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타작물 전환' 정책도 수요 기반이 약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남은 농지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