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은 물론 길가에도 널렸는데… 한국 농민들 괴롭히는 잡초의 '대반전’
2025-08-2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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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와 뿌리가 극도로 질겨서 '우근초'로 불리는데... 뜻밖의 효능

아스팔트 틈새나 메마른 흙길에서 꿋꿋하게 자라는 풀 하나가 있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도 굴복하지 않는 이 풀의 이름은 왕바랭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성가신 잡초일 뿐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 작은 풀에서 귀한 약재의 가치를 발견했다.
왕바랭이는 벼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4월쯤 발아해 8, 9월이면 손바닥 모양으로 갈라진 이삭꽃차례를 피워낸다. 높이는 60cm 내외로 자라며, 줄기에는 두세 개의 마디가 있다. 잎은 선형으로 폭이 3~7mm 정도다. 가운데 잎맥을 따라 접히는 특징적인 모양을 보인다.
왕바랭이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그 강인한 생명력에 있다. 줄기와 뿌리가 극도로 질기고 튼튼해서 웬만한 힘으로는 뽑아내기 어렵다. 중국에서 '우근초'라고 부르는 것도 '소의 힘줄처럼 질기고 억센 풀'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이름이다. 실제로 사람이나 농기계, 차량에 의해 다져진 땅에서도 방석 모양으로 펼쳐져 비스듬히 서며 생존을 이어간다.
왕바랭이는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울릉도와 제주도는 물론이고 남부와 중부 지역의 밭, 마당, 길가, 빈터, 도심의 잔디밭까지 햇볕이 잘 드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자라난다. 세계적으로도 따뜻한 지방에 널리 분포하는 대표적인 귀화식물이기도 하다.
한의학에서는 왕바랭이를 우근초 또는 천근초라고 부르며 소중한 약재로 활용했다. 맛은 달고 담백하며 성질은 서늘하다. 주된 효능은 청열해독, 거풍이습, 산어지혈로 열을 내리고 독을 해독하며, 풍습을 몰아내고 어혈을 풀어 출혈을 멈추는 작용을 한다.
구체적인 치료 용도를 보면, 여름 더위로 인한 신열이나 소아 급경풍, 류머티스성 관절염, 황달, 장염, 이질, 림병 등에 9~15g을 달여서 복용한다. 외상으로 인한 출혈이나 타박상에는 생풀을 찧어서 환부에 붙이는 외용법도 사용한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련이나 뇌염, 수막염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채취는 8, 9월에 한다. 이때가 약효 성분이 가장 풍부한 시기다. 풀 전체를 캐내어 깨끗하게 손질한 후 햇볕에 말려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말린 약재는 1회에 3~7g씩 200cc의 물에 천천히 달여서 복용하거나, 생풀을 짓찧어 즙으로 만들어 조금씩 마시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왕바랭이 열매는 식용이 가능하다. 부드러운 껍질에 싸여 갈색으로 익는 타원형 열매의 길이는 1~1.3mm 정도다. 과거 흉년이 들었을 때는 구황작물로 활용되기도 했다. 현재도 가축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피부질환 치료를 위해 왕바랭이를 달인 물로 세척하는 민간요법이 전해지고 있다. 해독 작용과 소염 효과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농업 분야에서는 여전히 골칫거리 잡초로 여겨진다. 씨앗을 많이 맺을 뿐만 아니라 뿌리가 워낙 질겨서 수작업으로 제거하기가 매우 힘들다. 큰 면적의 경우 열매 맺기 전에 로터리 작업을 하거나 잔디밭에서는 제초제 사용을 고려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강인함이야말로 왕바랭이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은 그 자체로 약효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자주 겪는 스트레스나 환경적 독소에 대한 저항력을 기를 때 이런 식물의 힘을 빌리는 것이 전통 한의학의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