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모텔에 감금돼 반성문 열 장 쓴 20대…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2025-09-0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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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겨냥한 ‘셀프감금형’ 수법 기승
대전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모텔에 스스로 갇혀 반성문을 쓰던 20대 남성이 경찰에게 구조됐다.

대전동부경찰서는 지난달 28일, ‘아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한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대전 동구 용전동의 한 모텔로 출동해 피해자 A 씨를 구조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대구에 거주하는 A 씨는 지난달 25일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사기 범죄에 당신 계좌가 연루됐다. 구속영장 청구 수사를 위해 대전으로 이동해 모텔에 투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A 씨는 나흘간 모텔에 머물며 “살아온 삶과 잘못한 일을 반성문으로 쓰라”는 요구를 따랐고, A4 용지 10장 분량의 반성문을 작성했다.
작성된 반성문에는 ‘개인정보 관리를 소홀히 해 범죄에 연루됐다’ 등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조직원은 “무죄 증명을 위해 자산 검수가 필요하다”며 금전을 요구했고, A씨는 부모에게서 2000만원을 받고 긴급대출 2000만원을 더해 총 9000만원을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출동 경찰관이 A 씨에게 보이스피싱 수법을 설명했지만, 그는 “피해 본 사실이 없다”며 항의했다. 그러나 경찰이 1시간 이상 설득을 이어간 끝에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금전 요구를 넘어, 반성문 작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자의 심리를 통제하는 가스라이팅 수법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으면 즉시 112로 신고하거나 경찰관서를 직접 방문해 달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기관을 사칭하는 유형의 보이스피싱 피해는 청년층에서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발생한 보이스피싱 범죄는 1만4707건, 피해액은 776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건수는 25.3%, 피해액은 98.7% 늘어난 수치다.
특히 보이스피싱은 과거 단순히 검사나 금융당국을 사칭해 돈을 요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치밀한 각본과 첨단 기술을 결합한 범죄로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피해자가 스스로 모텔에 들어가 생활을 통제당하는 ‘셀프감금형 보이스피싱’이 잇따르고 있다. 조직원들은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연루됐다”는 말로 피해자의 불안을 자극한 뒤, 가짜 사이트와 조작된 문서를 제시해 실제 범죄에 연루됐다고 믿게 만든다. 이어 반성문 작성과 정시보고를 강요하며 피해자의 심리를 장악한다.
경찰은 이러한 시나리오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도구로 악성 앱을 꼽고 있다. 앱이 설치되면 통화 가로채기, 휴대전화 정보 탈취, 위치·카메라·마이크 제어까지 가능해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이 통제된다. 피해자가 범죄를 의심할 틈조차 주지 않고 완전히 심리적 지배 상태에 빠뜨리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법이 다양해지고 교묘해지는 만큼,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았을 때는 지체 없이 112에 신고하거나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