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달래기 나선 트럼프... 한국 기업들이 속으로 부글부글 끓는 이유
2025-09-0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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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지지층 위해 무리한 단속을 벌였으면서...”
“미국 출장 가라고 하면 안 불안할 사람 있겠나”
미국 이민세관단속청(ICE) 요원들은 지난 4일(현지시각) 조지아주 엘라벨에 있는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전기차 배터리 공장에서 475명을 체포했다. 이 중 300명 이상이 한국 국적자였다.
8일(한국시각)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번 사태 이후 기업들은 기존의 미국 출장 관행을 전면 점검하고 제도적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협력업체 포함 300명 이상의 인력이 단속된 LG에너지솔루션은 임직원들에게 고객 미팅 등을 제외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현재 출장 중인 직원들도 업무 현황을 고려해 즉시 귀국하거나 숙소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현대차 역시 당분간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국 출장을 보류하기로 했다. 미국에 있는 주재원들은 적법한 비자를 발급받아 근무 중인 만큼 별도 조치 계획은 없지만, 이민법 및 고용 확인 요건을 철저히 점검 중이다.
일부 기업은 미국 비자별로 가능한 업무 범위에 대해 내부 검토는 물론 법무법인 자문까지 요청하기로 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 기업 관계자는 "이번 일로 예방 접종을 세게 맞은 만큼 앞으로 출장 가이드라인을 더욱 보수적으로 적용할 것"이라며 "모든 미국 출장은 완전히 원칙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상징이 된 1500억달러 규모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할 조선업계도 바짝 긴장했다. 이들 업체는 당장 대규모 설비 공사가 진행 중인 건이 없지만, 기술 협력이나 현지 사업 조율을 위해 소규모 출장이나 주재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 관계자는 "현재 파견자 수십 명 모두 적법한 비자를 발급받아 근무하고 있어 별다른 영향이 없다"면서도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마스가로 고조된 한미 조선 협력 분위기가 경색되지 않도록 현지와 긴밀히 소통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구금된 근로자들의 석방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 대변인은 "미국 프로젝트 관련 출장자의 체류 자격과 비자 제도를 검토하고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조선과 배터리, 컴퓨터 등 산업에서 필요한 한국 인력을 미국으로 불러오겠다고 한 데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근ㄴ 7일(현지시각) US오픈 테니스대회 남자 결승전 관람을 위해 뉴욕을 방문하고 워싱턴DC 인근의 앤드루스 합동기지로 돌아온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로 인해 한미 관계가 긴장될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 했다.
조선과 배터리 등 사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만큼 비자 제도 개선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과 반이민 정책 기조를 볼 때 유사 사례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회의적 시선도 여전하다.
한 기업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애초에 자국 지지층을 위한 무리한 단속을 벌이고는 국내외 비판을 의식해 달래기에 나선 것에 불과해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현장 분위기가 너무 달라 기업 혼란만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앞으로 미국으로 보낼 인력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 구금된 인력들이 향후 미국 입국에 불이익이 없는 자진귀국 형식으로 돌아오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현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이번 사태를 다들 똑똑히 봤는데 미국 출장을 가라고 하면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며 "앞으로 미국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묵인됐던 출장 및 근무 형태가 완전히 막힌 데다 민감한 관세 협상 와중에 대규모 단속이 이뤄지면서 한미 관계까지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가 비자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사태 수습 의지를 보였으나 크게 위축된 심리가 단기간에 회복될지는 불투명하다.
한편 구금된 인력들은 미국 내 행정절차를 마치고 오는 10일(한국시각) 전후로 귀국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