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았어?...야산 무인캠에 무려 24회 포착된 멸종위기종, 정체는 '이 동물'
2025-09-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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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산양, 숨겨진 생존의 흔적
백두대간의 숨은 주인공, 산양의 비밀
경북 문경시의 한 야산에서 낯선 생명체가 무인카메라에 반복 포착됐다. 우리나라 야생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토종 동물, 바로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양(긴꼬리산양)이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환경단체 녹색연합과 문경시민희망연대, 산과자연의친구 등은 지난 6월 12일부터 8월 20일까지 약 두 달간 문경시 주흘산 케이블카 상부승강장 예정 부지 일대에 무인 센서카메라를 설치해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그 결과, 상부승강장 부지 내에서 산양이 무려 24회나 촬영됐다. 개체 수로는 최소 3마리에서 최대 5마리까지 확인됐으며, 부지에서 600~700m 떨어진 지역에서도 추가로 4회 산양의 흔적이 포착됐다.
산양은 우리나라에서 약 1000여 마리만 남아 있는 법적 보호종이다. 포획이나 채취는 물론 서식지 훼손도 엄격히 금지돼 있으며,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돼 국가 차원의 보전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산양이 대규모 개발 예정지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된 것은 단순한 생태 뉴스에 그치지 않는다. 백두대간 생태축 보전과 멸종위기종 보호 정책, 지역 개발 계획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문경시는 자체 조사에서 해당 구역에 산양의 유입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하며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무인카메라라는 과학적 조사 도구가 보여준 결과는 정반대였다. 실제로 다수의 산양이 해당 지역에 서식하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환경단체는 즉각 전면 재조사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다수의 산양이 발견된 것은 백두대간 생물다양성이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며 “케이블카 사업지구에 대해 산양 등 멸종위기종 공동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 결과는 단순히 한 지역 개발사업의 찬반 논란을 넘어, 멸종위기종 보전 정책의 실효성과 국가 생태계 관리 방향을 되돌아보게 한다. 환경부는 지난 2020년 12월 ‘산양 보전계획’을 수립하고 먹이 급이대와 쉼터 운영, 폐사 예방 조치 등을 추진해 왔다. 특히 겨울철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 울타리 문제로 산양이 폐사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울타리 일부 개방과 관리 개선 조치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개체 수는 한정적이고 서식지는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문경 사례는 멸종위기종 보호와 지역 개발이라는 두 과제가 얼마나 첨예하게 충돌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케이블카 사업이 필요하다는 논리와, 법적 보호종인 산양 서식지가 확인된 만큼 사업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견이 ‘백두대간 생태축’ 관리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실제로 산양은 가파른 절벽과 깊은 산악지대를 선호하는 종으로, 인간의 개발 압력이 커질수록 생존 터전이 급격히 위협받는다. 산양의 존재 자체가 곧 생태계 건강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되는 이유다.
현재로서는 문경시 케이블카 사업 추진 여부가 이들 멸종위기종 보호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번에 포착된 24회의 카메라 기록은 사업의 정당성을 흔드는 강력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개발과 보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현실적 해법 마련이 절실하다.
“한국에 살았어?”라는 놀라움 속에서 드러난 산양의 존재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산양이 보여준 발자취는 우리나라 생물다양성의 현재이자,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신호다. 멸종위기 동물의 서식지 한가운데서 케이블카가 들어설지, 아니면 새로운 보전의 계기가 마련될지는 향후 재조사와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