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명 사망, 500여명 부상' 네팔 반정부 시위, 대체 왜 일어났나
2025-09-1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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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Z세대, SNS차단에 분노 폭발
"부패 척결!" 외치며 총리 몰아내다

소셜 미디어 차단 하나가 한 나라를 뒤흔들었다. 9일(현지시각) 네팔의 20대 청년들이 카트만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총리를 사임으로 내몰았다. 시위대는 정부 청사에 불을 지르고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정부의 소셜 미디어 금지 조치가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젊은 세대의 분노는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나왔다. 수십 년간 쌓인 부패와 불평등, 그리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무시당해온 현실에 대한 절망이었다.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는 정부의 소셜 미디어 금지 조치였다. 네팔 정부는 지난 5일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옛 트위터) 등 26개 플랫폼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정부는 이들 플랫폼이 데이터 공유 기한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젊은이들의 일상에 직격탄을 날렸다. 네팔의 1500만 명 이상 청년층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일자리를 찾고, 목소리를 냈다. 소셜 미디어 금지는 그들의 연결 고리를 끊었고, 동시에 정부의 통제 욕구를 드러냈다.
시위 주최자들은 이 금지를 '디지털 독재'로 규정하며, 카트만두 중심부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수만 명이 모여 정부 청사로 행진했다. 경찰이 최루탄과 실탄으로 진압하자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맞섰다.
소셜 미디어 금지가 단순한 트리거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네팔의 장기적인 정치·경제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네팔은 2008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됐지만, 그 후 정치 불안정이 지속됐다.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가 지난해 총리로 재임했지만 연정 갈등과 빈번한 내각 개편이 반복됐다. 지난해에도 야당과의 충돌로 의회가 해산됐다가 재개됐고, 이는 국민의 정치 불신을 키웠다.
부패는 네팔 사회의 암으로 자리 잡았다. 올리 총리가 이끈 통합마르크스레닌주의 네팔공산당(CPN-UML)과 네팔회의당(NC) 좌파 연립정부는 부패를 척결하고 경제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뇌물이 일상화됐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네팔의 부패인식지수는 180개국 중 108위다. 실제로 2023년 정부가 추진한 인프라 프로젝트에서 수억 달러가 사라졌다는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네포 키즈'(부모의 영향력 및 자원을 활용해 자기 경력을 쌓아 올리는 이들) 현상이 시위의 핵심 불만으로 떠올랐다. 정치인 자녀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며 공공 자원을 착복한다는 비판이 온라인에서 확산했다. 한 정치인 자녀가 고급 차량과 해외 여행을 자랑하는 영상이 퍼지면서, 젊은이들은 '왜 우리는 일자리조차 없는데'라는 질문을 던졌다.
네팔의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기준 19%를 넘었고, 대학 졸업생의 40%가 해외로 이주를 꿈꿨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광 산업이 회복되지 않은 까닭에 GDP 성장률이 지난해 2.5%로 둔화했다. 젊은이들은 이러한 경제 불평등을 정부의 무능으로 봤다. 시위 슬로건 중 하나는 '부패를 끝내자, 기회는 우리에게'였다.
시위는 부패와 경제 문제 외에 젊은 세대의 사회적 소외감에도 원인을 두고 있다. 네팔의 젊은 세대는 결정 과정에서 소외됐다. 의회 의석의 70%가 50대 이상 남성으로 채워졌고, 청년 대표는 5% 미만이었다. 지난해 선거에서 야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묵살됐다.
게다가 정부의 환경 정책 실패가 더해졌다. 히말라야 빙하 융해로 인한 홍수 피해가 증가했지만 정부는 대응을 미뤘다. 지난해 몬순철에 2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는 인프라 투자 부족 때문이었다. 이러한 누적된 불만이 소셜 미디어 금지를 트리거로 폭발한 셈이다.
시위는 카트만두를 넘어 포카라와 기타 주요 도시로 퍼졌다. 시위대는 정부 청사와 정치인 주택을 불태웠고, 네팔 행정 본부인 싱가 다르바르 일부에 불을 질렀다. 시위대가 잘라 나트 카날 전 네팔 총리의 집을 불태웠으며,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그의 아내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며 사망자는 22명으로 늘었고, 부상자는 500명을 넘었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투입했지만, 올리 총리는 결국 이날 사임했다. 이는 2006년 왕정 반대 시위 이후 가장 큰 정치적 변화였다. 시위 주최자들은 'Z 세대 운동'을 자처하며 부패 청산과 청년 참여 확대를 요구했다.
1990년대 마오이스트 반란으로 1만 7000명이 죽었고, 2015년 지진으로 9000명이 사망한 후 재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국제 원조를 받았지만 부패로 인해 현장에 도달한 금액은 30%에 불과했다. 젊은이들은 반복되는 부패와 실패를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소셜 미디어 금지는 도화선이었을 뿐 진짜 이유는 체제 전체의 개혁 요구였다. 국제사회는 새 정부 구성 과정에서 청년 목소리가 반영될지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