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석 경사 사망 당시 일지엔 3인 근무인데 팀원들 쉬고 있었다
2025-09-16 16:38
add remove print link
생명을 구한 해경 마지막 순간, 드러난 조직의 허점
갯벌에 고립된 주민을 홀로 구조하려다 숨진 해양경찰관 사건을 둘러싸고 당시 파출소 근무 체계에 심각한 허점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함께 당직에 들어갔어야 할 동료들이 정해진 휴게시간이 아님에도 자리를 비운 채 쉬고 있었고, 이로 인해 고 이재석 경사가 사실상 단독으로 근무를 하게 된 정황이 확인됐다.
16일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의원실이 해양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영흥파출소 근무일지에 따르면, 지난 10일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이 경사는 동료 2명과 함께 당직 근무를 해야 했다. 이후 새벽 1시부터 4시까지는 다른 팀원들이 교대로 투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 경사가 B 팀장과 둘만 남아 근무를 이어갔던 것으로 나타났다.

근무일지에 이름이 올라 있던 A 씨 등 4명은 자리를 비웠다. 이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B 팀장의 지시에 따라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휴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공식적으로 보장된 휴게시간이 아님에도 다수의 인력이 동시에 빠져나가면서 현장의 대응 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파출소는 그 시간대에 사실상 두 사람에게만 의존하게 됐다.
이 경사는 다음날 새벽 2시 16분쯤 드론 카메라에 포착된 고립자를 확인하기 위해 홀로 현장에 출동했다. 인천 옹진군 영흥면 꽃섬 인근 갯벌에서 70대 남성이 밀물에 갇혀 있던 상황이었다. 구조 인력이 부족했던 탓에 그는 지원 없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 경사는 급격히 차오르는 물살 속에서 자신이 착용하던 구명조끼를 건네며 남성을 구하려 애썼다. 하지만 거센 조류에 휩쓸려 결국 오전 3시 27분쯤 실종됐다. 수색은 즉시 시작됐지만, 그가 발견된 것은 약 6시간이 흐른 오전 9시 41분이었다.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고립돼 있던 남성은 이 경사의 희생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사건 이후 파출소의 근무 체계와 보고 과정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근무일지에는 분명 세 명 이상이 함께 당직을 서도록 기록돼 있었으나 실제로는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일부 인력이 “지시를 받았다”며 장시간 자리를 이탈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직 내 관리와 책임 의식에 큰 허점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문대림 의원은 “해당 근무일지는 허위 보고에 해당할 수 있으며, 이는 단순한 착오가 아닌 조직 관리 전반의 문제를 보여준다”며 “직원 안전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해양경찰 내부에서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양경찰청 내부에서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현장 대응 인력의 근무 규율 강화, 휴게시간 운영 방식 점검, 긴급 상황 시 인력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매뉴얼 재정비 등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한 젊은 경찰관이 희생된 뒤여서 현장 인력 사이에서는 “사고 후 땜질식 대책”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파출소의 관리 부실 문제를 넘어, 해양경찰 전반의 조직 문화와 시스템이 안전을 충분히 담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대 근무를 둘러싼 피로 누적, 충분하지 않은 인력 충원, 그리고 형식적으로 작성되는 근무일지 등 여러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재석 경사의 희생은 구조 현장의 열악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홀로 출동해 구명조끼까지 벗어 건네야 했던 그의 선택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렸지만, 동시에 기본적인 안전 장치조차 마련되지 않은 현장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장 대응 인력의 안전과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요구된다.